[세상읽기] 한승훈 |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몇해 전 일이다, 큰아이가 식사 전에 유치원에서처럼 다 같이 “아멘”으로 끝나는 노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치원에 사정을 물었더니 ‘기독교재단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기도를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종교법인이 세운 교육기관이라고 해서 특정 종교를 가르치는 것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고, 노래에 포함된 “하나님” 등의 단어는 개신교에서 특수하게 사용하는 표현이며, 지역 학생인권조례에서 청소년들에게 특정 종교 의례를 강제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는데 유아에게 개신교식 기도를 시키는 것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담임 교사는 선의와 진심이 느껴지는 친절한 말투로 이렇게 응대했다. “그럼 ○○(필자의 자녀)만 기도하지 않고 빠져 있도록 하면 될까요?” “그렇게 하시면 명백한 종교차별이 됩니다.” 결국 식전기도를 지속하되 개신교 주일학교식 노래를 하는 것은 중단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자녀에게 종교를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아동·청소년기의 종교적 정체성 형성에서 양육자나 교육기관의 개입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등을 고민하게 된 것은 그즈음이었다.
최근 아시아종교연구원 주최 학회에서 종교교육 연구자인 고병철 박사의 발표를 들은 뒤 필자는 이것이 양육방침 수준이 아닌 제도적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종교교육은 크게 세가지 지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특정 종교의 교리교육. 둘째, 종교적인 지혜를 바탕으로 한 영성, 인성교육. 셋째, 종교를 역사,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서 객관적으로 다루는 종교학 교육이다.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종교 교과를 선택과목으로 채택할 수 있으며, 몇 종류의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한다. 종교계 사립학교의 비중이 큰 한국에서는 교리교육의 자율성에 대한 요구가 컸으나, 2000년대 이후 교육과정에서는 종교학 교육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 교과를 채택하는 학교의 대다수는 종립학교들이고, 담당 교사들도 일반적으로 각 교단 성직자나 교의학자들이며, 이들은 종교학보다는 개별 종교전통 교육을 선호한다. 교육과정 개편이 있을 때마다 이들은 종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이 학생들에게 특정 신앙을 강요한다는 것은 편견이며, “종교학 교육”만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인적인 종교교육”을 저해한다고 주장해 왔다. 공교육에서 특정 종교 교리교육이 문제라면 영성, 인성교육을 통해서라도 더 적극적인 종교 교육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필자는 공교육에서의 종교교육이 사회문화 안에서 종교의 역할을 이해하고, 자신과 타인의 신념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종교 문해력’을 기르는 데 집중돼야 한다고 본다. 타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배타적 교파 교육도 심각한 문제지만, 종교는 모두 구시대적 미신이고 사회악이라는 관점도 대안은 아니다. 그런 해악은 전통적인 제도종교만이 아니라 정치인 팬덤이나 세속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 등에서도 관찰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종교전통들과 인간의 ‘종교적’ 문화 일반을 다루는 청소년기의 종교학 교육은 자신의 정체성, 신념, 삶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동료 시민에 대한 관용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입시제도 아래서, 그것도 주로 종립학교에서 채택되는 선택과목에서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 종교학적 관점은 일차적으로 어문, 사회, 역사, 윤리 등 다양한 교과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다뤄지는 종교에 대한 정보를 개정, 보충하는 데 적용되어야 한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종교 관계 내용은 개념 암기에 집중돼 있고, 그마저도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성교육 필요성도 논의할 가치가 있다. 의례 참여, 기도, 명상 등을 통한 종교경험이 주로 청소년기에 시작되며, 그것이 개인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상당량 축적돼 있다. 문제는 특정 종교지도자나 단체가 영성 체험의 의미를 독점하고 배타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경우다. 잘 설계된 영성교육은 그런 체험을 신비화하기보다 보편적인 인간 경험의 일부로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제도교육에 포함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