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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그놈의 ‘제2의 아무개’ 타령

등록 2022-07-14 18:16수정 2022-07-15 11:05

‘왜 나는 몰입할 수 없는데 그는 계속 몰입할 수 있는가’보다, ‘왜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몰입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는가’라고 질문하고 싶다. 어떤 환경에서도 몰입할 수 있는 천재들보다, 몰입하고 싶지만 몰입하기 어려운 존재들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심사위원장인 마린 올솝이 이끄는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포트워스/AP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심사위원장인 마린 올솝이 이끄는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포트워스/AP 연합뉴스

박권일 | 사회비평가·<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지난 두어달, 경제는 휘청대고 정치는 수라장이었지만 한국인의 ‘국뽕’은 최고조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 선수가 아시아 선수 최초로 득점왕에 올랐다. 열여덟살 피아니스트 임윤찬씨는 놀라운 기량으로 밴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한국계 허준이 교수는 최고의 수학자에게 수여된다는 ‘필즈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어김없이 ‘제2의 허준이’와 ‘제2의 임윤찬’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들과 대한민국의 관련성을 따지는 사람들도 보였다. ‘순수 국내파’라는 점이 부각된 임윤찬씨의 경우, 어쨌든 한국 음악교육 시스템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국뽕’이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허준이씨 업적은 어떻게 봐도 한국 교육과는 별 관계가 없다. 청소년기 한국에서 공부한 적은 있지만 수학자로서의 경력은 미국 수학계 동료들과 협업하며 쌓아올린 것이다. ‘허준이씨는 미국인인데 왜 한국인들이 좋아하냐’는 냉소가 나온 이유다.

그런데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들 자체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천재’라는 말이 너무 흔한 세상이긴 하지만, 사실 진짜 천재는 평생 한두명 만날까 말까 한 수준으로 희소하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인도의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정규교육을 완전히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웠다. 물론 천재를 알아채는 시스템이 있어야 재능도 꽃피울 수 있다. 라마누잔의 재능을 정확히 알아본 건 고드프리 하디 등 영국 수학계였다. 그런데도 시스템이 천재를 만들어낸다고는 할 수 없다. 천재는 그저 천재지변처럼 나타난다.

한국인이 뛰어난 성취를 보이면 늘 같은 얘기가 튀어나온다. “‘제2의 아무개’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러면 관련 업계와 관료가 함께하는 즐거운 축제가 벌어진다. 엄청난 예산이 각종 건축물과 이벤트에 쏟아부어지다 정권이 바뀌거나 하면 어느새 사라져 있다. ‘제2의 아무개’ 찾기는 부모들 사이에서도 열광적으로 벌어진다. 영재교육, 수월성교육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아이가 유아기부터 혹독한 훈련과 통제를 감내한다. 처음엔 잘해서, 좋아서 시작하지만 절대다수는 이내 ‘벽’에 맞닥뜨린다. 한국의 적지 않은 부모는 그 벽을 ‘천재로 가는 시련’이라고 여긴다. 아이 또한 기대를 온몸으로 느끼기에 포기하는 게 쉽지 않다. 애초 재능이 없지 않았으므로 더더욱, 더 노력하면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고통을 감내한다.

그렇게 한 인간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 ‘재능의 발견’을 위해 희생된다. 한때의 추억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떤 이에겐 트라우마로 남고 때로는 참혹한 비극으로 끝난다.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청소년자살률 평균이 10만명당 5.9명인데 한국은 8.2명에 달한다. 이 수치가 ‘제2의 아무개’ 찾기 문화와 과연 무관할까.

임윤찬씨는 콩쿠르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모든 걸 단절하고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말했다. 열여덟살에 구도자가 된 이 경이로운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끝없이 몰입할 수 있는 재능’을 생각했다. 사회철학자 존 롤스가 이미 지적했듯이, 우연히 자질이 뛰어나게 태어난 이는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해 노력하기도 훨씬 쉽다. 재능뿐 아니라 ‘노오력’이나 몰입 역시 대부분 개인 의지가 아니라 운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운명의 장난으로 환원되는 문제일까?

‘왜 나는 몰입할 수 없는데 그는 계속 몰입할 수 있는가’보다, ‘왜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몰입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는가’라고 질문하고 싶다. 어떤 환경에서도 몰입할 수 있는 천재들보다, 몰입하고 싶지만 몰입하기 어려운 존재들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대부분 여성이거나 장애인, 누군가를 돌봐야 하거나 무언가에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좋은 사회란 극소수의 천재들에게 더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사회는, 노력 자체가 힘든 이들에게 천재보다 더 많은 자원을 투여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국가의 존재 이유가, 우월한 소수에게 특권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다수 인간의 역량을 북돋고 존엄을 지키는 데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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