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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병익 칼럼] 기자들의 저술

등록 2022-07-14 18:15수정 2022-07-15 02:38

전문서임에도 까다롭지 않다는 것은 학자가 아니면서도 전문가일 수 있는 기자의 집필 태도 덕분이다. 그들도 연구하고 참조하지만 학자들처럼 주장하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주제는 자유롭다. (…) 더구나 그 문체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김병익 | 문학평론가

지루한 유월을 나는 두 권의 책 읽기로 견뎠다. 김진현의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과 김동현의 <천일의 수도, 부산>은 한 지식인의 회고록과 한 도시의 지리지라는 점에서 소재와 그 전개 방식이 다르지만 저자들이 전직 기자였다는, 그래서 비슷한 문체를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앞의 책은 저자의 80여년 생애의 진솔한 고백으로 그가 체험한 우리 현대사를 돌이켜보게 하고, 뒤의 책은 부산이란 매우 흥미로운 도시를 여러 눈으로 묘사함으로써 나라 발전의 한 양상을 둘러보게 만들고 있다. 한 개인의 역사와 한 지역의 성장을 통해 나는 우리 근현대사의 빠른 발전과 그 전개 과정의 구체적인 실례를 본 것이다.

1930년대 중반에 태어난 김진현은 “가장 전쟁 경험이 많은 세대, 가장 많은 문자의 언어로 생활한 세대, 가장 이사 많이 다닌 세대, 가장 많은 혁명을 겪은 세대”를 살아왔음을 회고하고 있다. 그가 꼽은 혁명은 ‘사상·정치·경제·생활·기술…’ 등 역사의 모든 측면에서 일어난 사태였고, 그가 산 생활은 ‘한문·일어·한글·영어’ 등 몇 개의 언어를 쓰는 시대적 변화를 감당해야 했다. 그처럼 급변하고 다양한 세계를 한꺼번에 엮어 그 안에서 자라면서 소년 시절부터 기자를 희망한 저자는 ‘한국의 월터 리프먼’으로 그 변화의 역사를 기록 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실제 생애가 맡아야 했던 역할은 기록하는 기자만이 아니라 그가 취재하고 해석한 그 사회와 정책, 교육과 언론의 실무를 맡아 일하고 주도하는 책임자도 되어야 했다. 그는 ‘정치적 실체로 묵직하게 다가오는 세력’에 ‘티케이’(TK)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붙였고, “민족으로서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늙은 민족이되 근대국가, 시민사회, 공화정으로서는 아주 젊은,” 그럼에도 “세계 중심무대의 주역이 되고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창조할” ‘착한 선진화(善進化)’ ‘해양국가’로서의 미래의 한국을 기대했다.

“가슴으로 실감하고 머리로 기획하고 발로 뛰는 기자”로서 일찍 ‘코리안의 고동’을 장기 연재하며 그가 근무한 권력의 실세와 그 내분을 짚어 보이면서도 “진실 추구, 대의, 국익, 공동선”의 가치를 기본으로 추구하며 보도와 실행을 겸사했던 그의 기록과 행적은 현대 한국사가 진행해온 그 과정의 장면들을 재현하고 있다. “우리 같은 다생·다원·다양한 경험이 제대로 수렴, 발효, 양생하여 케이(K)-월드, 한국에 의한 세계평화가 이루어지는 날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감은 그 현장에서 체득한 인식이었다. 3·1절에 문득 금연을 결심하며 실천한 그의 ‘진실에 대한 외경, 정의에 대한 믿음, 인의·자비·사랑이라는 도덕률’ 위에서, 테크노 헤게모니 시대, 세계화 시대, 마지막 남은 기술주권으로 안보·평화·교육·금융·의료·보건·안전·문화·정보·복지에서 선제적 우위를 차지하기를 바라는 그의 염원에, 물론 나도 동의하면서 그의 열정과 자신감에 소심한 나까지 공감시켜주고 있었다.

그의 강렬한 정열에 비해, ‘부산학’(釜山學)의 새로운 경지를 연 후배 김동현의 저서 제목은 부산이 한국 전쟁 중 1천일 동안 대한민국 임시수도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부제 ‘부산 없으면 대한민국 없다’는 말로써 이 항구도시에 진한 애정을 드러낸다. 조선조의 개항으로부터 한국 제2의 도시로 성장하기까지의 역사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지난 시절의 정서에 다감하게 어려오는 자갈치시장과 영도다리가 빚는 고난의 애환들이 지리사와 풍속사, 대중문화사 속으로 젖어들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해운대 모래사장과 오륙도 등 이곳저곳 부산을 맴돈 적 있는 내게 저자가 소개하는 바다와 절, 시장과 거리가 더욱 반가워지면서 마지막에 덧붙인 “부산 사람들이 모이면 어쩐지 부산하고 부산스럽다”란 말에 손뼉 치며 동감하게 된다. 저자는 고등학교 3년의 인연으로 이 도시를 소개하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많은 역사책과 문학 등의 저작들만이 아니라 조용필의 가요까지 따듯한 정감으로 더듬고 있다. 이 덕분에 이 지리지는 역사학의 연구 대상이면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정감의 도시로, 식민과 피난의 고통이면서 시장의 고함과 휘황한 선등으로 뱃고동 울려오는 바다의 활기와 열정으로 다가온다.

이 두 책이 보여주는 집필의 수법이 공통되고 있음을 여기서 짚고 싶다. 전문서임에도 까다롭지 않다는 것은 학자가 아니면서도 전문가일 수 있는 기자의 집필 태도 덕분이다. 그들도 연구하고 참조하지만 학자들처럼 주장하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주제는 자유롭다. 자신의 공적인 이력을 기록하면서도 김진현이 자신의 연애 시절을 고백하고, 일본의 전진기지로서의 부산을 말하면서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노래할 수 있는 김동현의 자재로운 진술이 그 자유로운 수법을 보여준다. 더구나 그 문체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이 기사문체의 특징은 김진현이 기자로서 “애매모호한 언어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 통찰력과 천착력이 출중할 것”을 권고하고, 그럼에도 “창조력과 정직할 것”을 권고하고 있음에 주의를 들여야 할 것도 확인된다. 그것은 기자가 보고 알게 된 것,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문필가’로서의 자질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자에게 학자와 다름없는 성실, 작가와 비슷한 문학적 창조력이 요구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논픽션의 문필가임을 확인해드리기 위해서다. 나는 이 두 책에 이어 20세기 후반 미국 경제의 두 라이벌의 이론과 그들이 현실 경제에 끼친 영향에 관해 쓴 책, 니컬러스 웝숏의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을 읽었다.

경제학에 대해서는 무지한 내가 이 전문서를 끝까지 읽은 것은, 사르트르와 카뮈처럼 한 시대에 그 지향이 다른 라이벌의 대결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지만 고급한 이론과 그 현실화 과정에 대한 기자다운 글이 안기는 지적 매혹 때문이었다. 그들이 펼치는 서술의 자유로움, 씨름 경기를 보는 듯한 두뇌 싸움의 긴장감 등 기사문체의 힘과 매력들이 이 까다로운 책을 계속 붙들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기자들이 스스로의 장기를 충분히 살려, 전문 학자와 달리 발로 뛰는 추적 취재 비교를 하며, 학자·작가와 달리 접근법의 객관성과 문체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자유 스타일의 논픽션에 도전할 단계에 이미 이르렀다. 벌써 손세일의 대작 <이승만과 김구>를 가지고 있지만, 언론인들의 저술 활동은 더욱 권장되어야 한다. 우리 신문학은 기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문단이 엄연히 존재하는 오늘의 기자들은 논픽션 장르로 자신의 앞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김진현과 김동현은 그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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