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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당, 다시 일어서야 한다 [세상읽기]

등록 2022-07-10 18:21수정 2022-07-11 02:41

정의당 이은주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의당 이은주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지난주 문인들과 익산 왕궁터와 미륵사지를 둘러보았다. 홀로 서 있는 오층석탑의 고즈넉함이 좋았지만, 고통받는 백성을 위한 미륵 세상을 꿈꾸었던 무왕의 꿈이 싹도 틔우지 못하고 폐허가 되었던 역사가 반복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정의당이 자멸해가는 모습이 폐허로 남은 무왕의 꿈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여행 내내 진보 정치에 관한 생각이 마음을 붙잡았다.

정의당이 진보의 깃발을 다시 들 수 있을까? 정의당이 취약계층을 위한 분배를 주장하고 소수자를 옹호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정체성이 없다면 정의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사민주의 깃발을 들자는 주장이 이런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정의당이 위기에 빠진 원인은 사민주의 깃발을 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를 위해, ‘어떤’ 진보 정책을,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실현 가능한 비전, 정책,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자신이 대변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둘러싸고 잘못된 논쟁에 빠졌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새로운 진보’라는 당내 정파는 정의당이 “노동자와 시민”의 이해가 아닌 “페미”의 이해를 대변했기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정말 그럴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체성 정치와 분배 정치는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술과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증가하는 플랫폼과 프리랜서 노동자는 취약한 노동자인 동시에 노동시장의 소수자이고, 그런 비전형적 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 이슈는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 분배 정치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페미니즘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불평등과 차별을 해체하려는 운동과 이념이라고 했을 때, 분배와 정체성 정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정의당의 위기는 둘 중 하나를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두 이해가 공존할 수 있는 진보적 대안을 만들지 못한 무능함에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진보 정책을 만드는 역량이 소진된 것도 정의당이 위기에 처한 또 하나의 원인이다. 소수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 밖에 있는 진보적 그룹과 소통하면서,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맞게 새로운 진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의당은 당내 의견그룹이라는 정파조직에 매몰되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정파 간의 타협이 당의 입장이 되는 비민주적·반대중적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정의당은 평범한 사람의 삶의 경험에 근거한 진보적 의제를 만들어낼 수 없다.

민주당과의 연대도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기득권 정당의 잘못된 정책에 원칙 없이 동조하는 것은 정책 연대라고 할 수 없다. 소수정당이 진보 의제를 제도화하기 위해서 기득권 정당과 연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6석 정당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정책은 없다. 정책 연대의 과정에서 정의당이 자신의 주장을 양보하는 일도 불가피하다. 기득권 정당을 진보적 의제에 한발짝이라도 더 끌어와 진보 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정의당은 영국 노동당과 독일 녹색당이 어떻게 수권정당이 되어갔는지 숙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난제 중 난제는 한 문인의 말처럼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낮에는 민주당을, 밤에는 정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처럼 기득권 양당이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경우, 정의당 입지가 좁아지는 이유이다. 정의당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현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기득권 정당과 원칙 있는 정책 연대를 통해 정의당이 진보적 대안을 실현할 역량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분당을 입에 올리는 대신, 필요하다면, 몰염치한 기득권 정당처럼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읍소하고 천막 치고 당명을 바꾸고 재창당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라. 하지만 쇼가 끝나고 다시 과거의 퇴행적 모습으로 되돌아갔던 기득권 정당과 달리 실제적 변화를 보여줘라. 다시 일어서야 한다. 정의당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복지국가를 꿈꾸기는커녕, 우리의 운명을 또다시 국민의힘과 민주당 중 하나에 맡겨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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