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 국내담당부편집
아침햇발
서울 강남의 한 사립고교 졸업식에서는 ‘미국식으로’ 전 졸업생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았다고 한다. 한 지인은 이 장면을 전하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신선했다”고 촌평했다. “옛날 우리 때는 있는 집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위주였는데, 그렇지 않으니 얼마나 보기 좋으냐”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이 학교 학부모들의 의식을 일정 정도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필자도 얼마 전 딸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230여명의 졸업생이 다 단상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전원에게 특성과 취미에 맞는 ‘상’이 주어졌다. 학교 쪽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교실로 돌아와 졸업장을 나눠주는데 앨범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2명 있었던 것은 뜻밖이었다. 4만원대의 졸업앨범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가정이 바로 내 주변에도 있었다. 어두운 표정을 감추려 애쓰는 두 아이가 안쓰럽기만 했다.
어느 모임에서 가까운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예외적인 사례가 아닐까 여기면서도, 자기 초등학교 졸업식 때 고개를 떨구고 울던 같은 반 여자 아이를 회상했다. 공부도 잘하고 성실한 친구였는데 진학을 하지 못했다면서….
필자의 가족도 1970년대 초 서울로 이주하여 한 달동네에 정착했다. 몇년 뒤 비록 뺑뺑이로 배정받은 학교지만 아버지는 서울의 근사한 고등학교가 마음에 들었던지, 직접 교정을 둘러보시고는 ‘좋아, 흠, 좋아’라는 말씀을 거듭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가난은 감상적으로 다룰 주제는 결코 아니지만, 이른바 양극화의 공포가 유령처럼 배회하는 요즘엔 왠지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이기가 두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 아버지들은 어떻게 했을까?
삼성 8천억원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삼성의 헌납액은 기업이 조건 없이 사회에 내놓은 돈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라고 한다. 돈을 내놓게 된 경위야 어떻든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엔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8천억원 헌납 소식을 들은 첫 느낌은 “참 돈도 많구나”였지, 아쉽게도 그 이상의 울림은 없었다. 아마도 삼성가가 김밥장수 할머니도, 자수성가한 무명씨도 아닌 막대한 부를 가진 ‘귀족’이란 선입견이 무의식중에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자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돈을 어떻게 썼느냐에 좌우된다. 돈 없고 과문한 소견으로도 돈을 가장 잘 쓰는 것은 역시 인심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성가의 헌납 목적도 결국 인심을 얻고자 함일텐데, 그 성과 여부는 전적으로 앞으로의 행보가 말을 할 것이다.
한편으론, 삼성은 ‘조건 없이’ 돈을 내놓음으로써 우리 사회에 애꿎은 숙제 하나를 낸 셈이 됐다. 막대한 사회헌납액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디에 사용하느냐는 우리 사회의 문화수준과 당면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될 터이다. 대통령은 빈곤세습 및 교육기회 양극화의 해소를 바람직한 용처의 하나로 꼽았는데, 필자는 특히 후자에 방점을 찍고 싶다.
어느 시대, 어느 기성세대가 되든 계층 구분 없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최대공약수는 청소년 교육기회의 균등한 확대라고 믿는다. 한 부자의 돈이 공적인 수로를 타고 부디 골고루 흘러가게 되기를 바란다. 약하고 가난한 새싹들의 미래가 움트는 곳에 흘러가 닿는 한, 그 돈에는 시혜도 비굴함도 없을 것이다.
이인우 국내 담당 부편집장 iwlee21@hani.co.kr
이인우 국내 담당 부편집장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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