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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구름 속 산책, 오 찬란하여라

등록 2022-07-07 18:04수정 2022-07-08 02:39

장마철도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썩 괜찮은 시기다. 지루한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먹구름 사이로 약 올리듯 햇살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여러 층의 역동적인 구름이 겹겹이 쌓이기도 한다. 밴호네커는 “이 구름에서 저 구름으로 타고 올라가는 게 마치 안개로 만든 건물 속에서 신기할 정도로 각양각색인 층들을 통과해 올라가는 것 같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심채경 |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날은 비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나는 출장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보며 근심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탈 때만 해도 하늘엔 가벼운 구름 몇조각 둥실 떠 있었는데,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창밖의 구름이 짙어지더니 마침내 착륙을 앞두고는 솜사탕 안에 갇힌 것처럼 창밖 풍경은 무엇도 알아볼 수 없었다. 비행기 조종사 마크 밴호네커는 <비행의 발견>에서 짙은 안개 속을 비행할 때면 조종실 창문에 딱 맞게 회색 종이를 잘라서 붙여놓은 것만 같다고 썼다. 안개는 무척 고르고 정적이어서 비행기 창밖 풍경이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내가 탄 비행기는 안개 속이 아니라 엄청난 크기의 구름 속에 파묻혀 있었다.

곧 착륙 준비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고 안전벨트를 매라는 안내등이 켜졌다. 그러나 하강하던 비행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다시 위로 올라갔다. 창밖은 온통 구름이라 비행기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눈으로 분별할 수 없었지만 몸이 쏠리는 느낌으로 다시 상승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착륙 시도를 멈추고 대기하느라 큰 원을 그리며 공항 상공을 선회하자 아까와는 다른 방향의 구름도 볼 수 있었다. 아래는 온통 솜털처럼 하얀 구름이 땅과 바다를 뒤덮었고, 위로는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위아래 구름 사이로 베이지색 모래사장이 보이는 것 같아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구름 틈새로 슬쩍 보이는 이른 노을이었다. 구름 너머로는 이제 해가 지평선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중이었다. 목성에서 비행기를 탄다면 창밖 풍경이 꼭 그럴 것 같았다.

목성 대기에는 수십킬로미터에 달하는 두꺼운 구름층이 존재한다. 높이에 따라 각각 암모니아, 황화수소암모늄, 물을 주성분으로 하는 세 종류의 구름층이 대류권을 채우고 있다. 이들 구름층은 위도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교차하며 목성 특유의 가로 줄무늬를 만들어낸다. 시간에 따라 줄무늬의 폭이 변하고 색도 바뀐다. 흐름의 방향이 서로 반대로 바뀌는 접경지역에서는 커다란 적갈색 소용돌이 폭풍인 대적반과 같은 거대한 사이클론이나 진주알을 쏟아놓은 듯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작은 폭풍이 만들어진다.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강력한 제트기류는 극지방 근처에서 더욱 격렬한 사이클론들의 집합으로 바뀐다.

과거 ‘갈릴레오’라는 탐사선을 목성 대기 속으로 들여보낸 일이 있다. 계획했던 임무를 마친 뒤, 목성 위성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목성에 추락시켰다. 여기저기에서 번개가 치고 구름이 역동적으로 소용돌이치는, 가도 가도 끝없는 목성 대기 속으로 추락한 갈릴레오 탐사선이 자꾸만 생각날 무렵, 다행히 내가 탔던 비행기는 난기류에 휘말리지도, 공중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소모하며 하릴없이 체류하지도 않고, 다시 한번 비구름을 통과해 안전하게 지상에 나를 내려주었다.

장마철도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썩 괜찮은 시기다. 지루한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먹구름 사이로 약 올리듯 햇살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여러 층의 역동적인 구름이 겹겹이 쌓이기도 한다. 비행기를 몰며 그런 구름 속을 몇번이고 통과했던 밴호네커는 “이 구름에서 저 구름으로 타고 올라가는 게 마치 안개로 만든 건물 속에서 신기할 정도로 각양각색인 층들을 통과해 올라가는 것 같다”고 했다. 예측불허의 농담으로 물든 다양한 형태의 구름을, 그리고 바람이 그 구름을 하늘 여기저기로 휘몰아치며 남긴 역동적인 흔적을 살피다 보면 그림에는 영 자질이 없는 나라도 마음만은 훌륭한 화가가 된 듯, 자연의 화폭에 마음속 붓질을 해본다. 해가 질 무렵이면 노을은 하늘을, 구름을, 그리고 지구인의 마음까지 찬란히 물들인다.

애덤 매케이 감독의 영화 <돈 룩 업>이 경고하는 바와 같이, 기후위기는 마치 곧 지구에 충돌하고야 말 혜성처럼 이미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지구 위의 모두가 그렇듯, 한반도에 사는 우리 역시 예전과는 사뭇 다른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장마철은 길어질지도, 시기가 바뀔지도, 집중호우 규모와 빈도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다음 장마철 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태양계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자아내곤 하는 지구의 구름은 어떻게 달라져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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