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오롯한 빈틈이 동네의 숨통을 틔워준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새나라어린이공원. 사진 배정한
[크리틱] 배정한ㅣ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일상의 삶은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진다. 친숙하지만 지루하고 때로는 지겹기까지 한 ‘내가 있는 곳’. 늘 일하고 먹고 쉬는 장소를 벗어나고 싶지만, 익숙한 내 자리와 헤어질 결심은 불안감을 동반한다. 누구나 낯선 곳에 가기를 꺼린다. 그러나 이따금 용기를 내 잘 모르는 동네를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질 때가 있다. 낯선 장소감과 자발적 고립감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느낌, 의외로 안온하다. 나에겐 후암동이 그런 동네다.
남산 자락과 용산 미군기지 사이에 낀 노후한 동네, 후암동을 처음 만난 건 몇년 전 용산공원 프로젝트 회의 때였다. 시간이 남아 대로변 약속 장소의 한 켜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상하기 힘든 밀도의 도시 풍경이 펼쳐졌다. 여러 시대의 양식과 질료가 뒤섞여 붙은 낡은 주택가, 시간의 흔적이 두껍게 쌓인 거리와 가게, 들쭉날쭉한 가로 조직과 두 사람이 함께 걷기 힘든 좁은 골목길, 숨을 헐떡이게 하는 가파른 경사의 비탈길과 계단. 지도 앱을 켜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복잡하게 뒤엉킨 골목 어디서나 남산과 엔(N)서울타워가 보여 이방인의 길잡이가 된다는 걸 깨닫자 겨우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생경함이 호기심으로 변했다. 한강대로를 지나는 버스를 타면 별 이유 없이 후암동 근처에 내려 낯선 동네를 걷곤 했다. 속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유달리 동 이름을 단 상호가 많다. 시장, 교회, 미용실, 세탁소, 카페, 호프집, 칼국수집, 피아노학원 앞에 예외 없이 ‘후암’이 붙은 건 그만큼 장소 정체성이 뚜렷하다는 뜻일 테다. 후암동 일대는 1920년대에 일본인들의 고급 거주지로 개발됐다. 외관은 서양풍이고 내부는 일식 목구조로 지은, 이른바 ‘문화주택’이 유행했다. 이 적산가옥들이 골목 곳곳에 남아 있는 하얀 회벽 집들의 정체다. 이 바탕 위에 해방 이후 상류층 저택들이 추가됐고, 흔히 ‘빌라’라 불리는 다가구주택과 다세대주택이 1990년대에 밀려들었다. 최근에는 솜씨 좋게 디자인한 협소 주택들이 새 풍경을 빚어내고 있고, 낡은 건물을 감각적으로 고친 로컬 ‘핫플’이 속속 들어서며 ‘뜨는 동네’ 반열에 진입하고 있다.
산자락 지형, 느릿한 시간의 흔적, 정겨운 골목 풍경. 관광객들에겐 매력적이지만 주민들에겐 불편하고 낡고 답답한 일상의 환경이다. 그러나 그 속에 파묻힌 작지만 오롯한 빈틈이 후암동의 숨통을 틔워주며 고단한 삶의 현실을 넉넉히 품어낸다. ‘새나라어린이공원’이라는 이름의 조그만 공간이다. 특이한 삼각형 모양의 작은 공원, 넓은 잔디밭이나 울창한 수목이 있는 건 아니다. 조경가의 손을 거친 세련된 형태도 아니고, 오래된 공원 특유의 복고풍 감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느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놀이기구, 인조잔디를 깐 좁은 운동장, 가장자리의 앉음벽과 벤치들이 전부다. 하지만 언제나 붐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청소년들은 공놀이와 줄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수다로 스트레스를 푼다. 그늘 밑은 할머니들 차지다. 동네의 연결망이자 접착제인 작은 공원은 잠시 땀을 식히는 오토바이 배달원도, 주변 식당의 대기 순서를 기다리는 젊은 커플도, 목적 없이 서성이는 나 같은 이방인도 반기며 자리를 내준다.
이 지면에 글을 쓰기 시작한 꼭 4년 전 여름, 우리를 환대하는 장소와 공간 이야기를 자주 써보자 마음먹었다. 작은 공원의 너그러운 풍경을 한번도 다루지 않은 게 아쉬워 여전히 낯선 후암동의 작은 공원을 오랜만에 찾았다. 한구석에 앉아 줌파 라히리의 장소 소설 <내가 있는 곳>을 뒤적이며 졸았다. 눅눅한 머릿속이 바싹 말랐다.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배정한 교수는 8월부터 새로운 코너에서 좀더 긴 호흡의 글로 독자 여러분을 만납니다.
모두를 환대하는 작은 공원의 힘. 서울 용산구 후암동 새나라어린이공원. 사진 배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