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5년째를 맞은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또 하나의 성 장벽을 허물었다. 그동안 역대 여자 우승자 이름을 명판에 새길 때, 남편 이름을 쓰고 그 앞에 미시즈(Mrs.)를 붙이던 관례를 철폐하고 새로 정비한 것이다. 윔블던에서 여섯차례 정상에 올랐던 빌리 진 킹은 ‘미시즈 L. W. 킹’으로 기록됐다가 이번에 자기 이름을 되찾았다. 1981년 우승자인 크리스 에버트도 이전의 ‘미시즈 J. M. 로이드’에서 원래 이름으로 새겨졌다. 결혼 전 우승하면 이름 앞에 미스(Miss)를 붙이던 것도 없앴다.
윔블던 조직위는 지난해부터 남녀 선수에게 주는 수건의 색깔도 통일했다. 앞서 2007년에는 남자 5세트, 여자 3세트 경기 시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남녀 선수에게 동일 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윔블던이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참가 선수들이 흰색 계통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 신발도 색깔 있는 끈이나 밑창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은 여전하다. 윔블던 조직위 쪽에서는 “오로지 선수에게 집중토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의무조항은 없지만 관중들도 될 수 있는 한 정장이나 튀지 않는 옷을 입고 입장하는 게 관례가 됐다.
윔블던 보수주의는 4대 그랜드슬램 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잔디 코트를 사용하는 데서 볼 수 있다. 잔디는 하드코트에 비해 표면이 미끄럽고 공도 낮게 깔려 경기하기 어렵지만, 자연적 조건에서 우승자를 가린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주요 경기가 열리는 센터 코트의 잔디는 2주간 경기를 위해 1년 동안 보호관리를 받는다.
1968년부터 프로 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했고 200만파운드(31억5천만원)의 우승 상금을 주지만, 코트 안팎에 상업광고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윔블던의 특징이다. 왕실과 회원의 기금, 채권 발행, 티켓값 등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공을 나르는 볼보이, 비둘기를 막기 위한 ‘루퍼스’ 사냥매 운용, 관록의 경기요원 등 또한 고품격 대회를 위한 설계다.
스포츠 사회학자인 엘리스 캐시모어는 윔블던 대회를 “현대 영국의 다문화 성격에서 멀리 떨어진 고립된 이벤트”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변화하면서도 전통을 지키는 윔블던의 노력은 모든 게 비슷해지는 시대에 대회의 차별성을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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