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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1세기, 한국인은 누구일까?

등록 2022-06-30 18:28수정 2022-07-01 02:38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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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4년 만에 졸업식이 열렸다.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라 졸업생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토요일 아침 9시30분이면 아이들 93명이 모인다. 대부분 30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 등교한다. 유아반부터 중고등학생이 모인 고급반까지, 한국어로 말하기 읽기 쓰기를 배운다. 한국어에 서툰 고학년을 위해 영어로 가르치는 반이 두 반 있고, 그중 한 반은 성인에게도 열려 있다. 고급반까지 올라가는 동안 4, 5, 6학년 즈음 아이들은 부모와 끈질긴 실랑이를 벌인다. 다수가 발길을 끊는다. 그 와중에 10년 동안 토요일을 한국학교에서 보낸 두 여학생이 졸업했다.

봉사자까지 아이들 110여명이 강당을 메웠다. 나 역시 10년 동안 토요일을 함께했지만 의문이 올라왔다. “왜 이 아이들은 토요일을 이곳에서 보낼까?” 스무명 남짓한 부모들을 인터뷰하며 이유를 찾아 나섰다.

이민 1세대 부모들은 아이와 한국어로 속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 왔다고 했다. 5년 전부터 나온 남매는 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 할머니가 등교시키고 있다. 미국인들 말로 25% 생물학적 한국인이라고 하겠다. 단군의 자손이라는 의식이 뼛속에 자리한 세대에게 할머니의 모습은 ‘애국심’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4년 전 미국인들이 한글학교에 등록했을 때 이민 1세 학부모들은 한국 위상이 높아졌다며 웅성거렸다. 그즈음부터다. 유아반과 저학년 초급반에 이민 2세 부모들 비율이 늘었다. 이들은 언어보다 관계와 문화를 중시한다.

“중식당에 갔는데, 아이가 화(火) 자를 보더니 ‘이건 불이야!’ 하는 겁니다. 한국학교에서 배운 걸 적용하니 흐뭇했어요. 그래도 저는 아이들이 한국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점이 훨씬 좋습니다.” 두 아들의 아빠인 안 재의 말이다. 뉴욕에서 온 그레이스 심은 한국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시켜 당황했다고 했다. 숙제가 부담스럽다며 한국문화에 더 집중하길 바랐다. 같은 문화유산을 나누고 같은 언어로 조부모와 말하는 친구를 사귀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한국인 배우자보다 뒷바라지에 더 열성인 미국인 부모도 있다. 세 아이의 엄마인 거르딥 달리왈과 두 딸의 아빠 짐 켈러다. 특히 켈러는 큰딸이 만 2살 때 한국에서 엄마와 석달간 유아원에 다니도록 했다. 지난봄엔 둘째도 한국으로 한달살이를 보냈다. 첫째 뒷바라지를 자청하며 추진한 교육이다. “유아기에 기본 언어를 다져야 해요. 한국사람처럼 생각하고 한국에 관한 기억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다중문화 정체성을 갖는 가족이 늘고 있다. 아구스티나 카란도는 딸에게 스페인어로, 남편은 한국어로 말한다. 딸이 한국학교에선 한국사람처럼 느끼고 아르헨티나에 있는 외할머니와 만날 때는 스페인어를 하며 순간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했다. 이중언어 교수인 그는 정체성 형성에 언어와 고유문화에 관한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민 1세 부모나 2세 부모나 한국학교에 오는 마음은 한결같다. 자기 안에 있는 근원을 환대하며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살기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달 한국학교 소풍에 대기자 명단에 있는 플로라 가족이 왔다. 입양가족이다. 이들은 딸을 위해 피츠버그에서 아시아인들이 많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엄마인 샤 마브릭은 말한다. “플로라는 여러 상황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완전히 미국인이거나 한국인이라는 느낌이 없겠죠. 한국문화와 연결되지 않으면 그런 분열을 억누르거나 거부하는 분노를 배울지 모릅니다. 제가 그 짐을 대신 질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많이 함께 질 거예요.”

정체성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세계화 시절이다. 인종의 경계, 마음의 준거가 모호해지고 있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의 경계는 어떠할까? 한국 국적이라는 테두리 속에도 여러 문화정체성이 자리한다. 세계 곳곳에 한국학교가 세워지길 바라서, 한국학교에 재정지원이 있길 바라서 이 글을 쓰지는 않았다. 이 아이들 중에서 미국의 장관이 나올지 모르니 관리하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세상이 늘 변화하듯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변화해왔음을 짚고 싶다. 미국에서 이민자라는 소수자로 살기에 나는 한국 속 이민 1세, 2세들이 자기 안의 정체성을 환대하며 당당히 시민으로 제 몫을 추구하길 바란다. 개인들이 박탈감을 갖는 시간이 줄수록 그 사회의 안전지수는 오른다. 한 사회가 다양한 문화정체성을 지원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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