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17일 남북 철도 연결구간 시험운행 때 남쪽의 ‘새마을호 7435 열차’(기관사 신장철)가 경의선 최북단역 도라산역을 지나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마지막 통문을 통과해 북쪽으로 향하는 순간. 사진공동취재단
동해선은 김정일 위원장이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임동원 특사가 난색을 표하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중국 일변도의 경의선만 중시할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도 고려해 동해선 연결을 추진해야 해요. 중국과 러시아를 함께 끼고 나가야 해요. 서쪽의 경의선을 중국횡단철도와, 그리고 동쪽의 동해선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하면 조선반도가 ‘평화지대’가 될 수 있어요. 부산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중국횡단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물동량이 오가는데 어떻게 여기서 전쟁이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제훈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1993년 한겨레에 들어와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시작과 중단, 다섯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여섯차례의 북한 핵시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세 승계’, 두차례 북-미 정상회담, 사상 첫 남·북·미 정상회동 등을 현장에서 취재·보도해왔다. 반전·반핵·평화의 한반도와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nomad@hani.co.kr
기적이 울렸다. 2007년 5월17일 오전 11시27분께 경의선 문산역과 동해선 금강산역에서 힘차게 출발한 열차가 분단의 벽을 뛰어넘었다. 경의선 남쪽 열차는 낮 12시18분, 동해선 북쪽 열차는 낮 12시21분 군사분계선(MDL)을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넘어섰다. 경의선은 1951년 6월12일 운행 중단 이래 56년, 동해선은 1950년 이후 57년 만의 군사분계선 종단 운행이었다.
경의선 구간에선 남쪽의 ‘새마을호 7435열차’(기관사 신장철)가 오전 11시28분 문산역을 출발해 임진강역과 도라산역을 거쳐 군사분계선을 힘차게 통과하고는 북의 판문역과 손하역을 지나 오후 1시3분 개성역에 닿았다. 동해선 구간에선 북쪽의 디젤기관차인 ‘내연 602호 기관차’(기관사 로근찬)와 객차 5량이 오전 11시27분 금강산역을 출발해 삼일포역과 감호역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고는 낮 12시34분 남쪽 최북단역인 제진역에 도착했다.
남과 북의 열차가 분단의 세월을 뛰어넘어 경의선(27.3㎞)과 동해선(25.5㎞)의 남북 철도 연결구간을 내달려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는 데 각각 1시간35분과 1시간7분이면 족했다. 두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지나는 순간, 열차 승객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눈물 번진 웃음 띤 얼굴로 함께 불렀다. 경의선 열차에 타는 ‘행운’을 얻은 고 리영희 선생(당시 78살)은 “중학교 1~4학년을 서울에서 다니며 방학 때 고향 (평안북도) 삭주에 갈 때마다 경의선을 탔다. 그때 경의선은 일제가 조선과 만주를 수탈하려고 건설한 열차였지만, 오늘 이 열차는 한반도 평화를 지속시키고 유럽까지 뻗어가 민족의 번영을 가져오는 열차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감격스레 호소했다.
열차는 내처 신의주와 부산으로 질주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3시30분 다시 기적을 울리며 문산역과 금강산역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2022년, 남북 연결 철길엔 작열하는 태양에 짓눌린 고요와 쓸쓸함이 떠돈다. 한반도의 동과 서를 종단하며 민족의 혈맥을 이을 경의선과 동해선이 언제쯤 정기노선을 운행할지 지금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남북 당국은 30여년 전인 1991년 12월13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처음으로 끊어진 철길 연결에 뜻을 모았다. 그날 남북이 합의·발표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19조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 항로를 개설한다”는 문장이 그것이다. 남북은 이듬해 8차 고위급회담에서 합의·채택(1992년 9월17일)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제3장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남북교류협력 부속합의서) 3조2항에서 “경의선 철도와 문산-개성 사이의 도로를 비롯한 육로 연결”을 포함해 민족의 혈맥을 잇는 육·해·항로 개설의 구체 방안을 문서로 합의했다.
합의는 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미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불거진 이른바 ‘1차 북핵 위기’와 남북, 북-미 갈등 탓이다.
‘말’에 그치던 남북 철도·도로 연결의 꿈은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실천’의 단계로 진화했다. 2000년 6월14일 오후 3시 평양 백화원영빈관 회의실에서 시작된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다시 잇죠”라고 제안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님께서는 (1994년 7월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렸다면) 우선 경의선 현대화 사업부터 추진하고자 하셨지요”라고 화답했다.
남북은 정상회담 직후 철도 연결 논의에 속도를 냈다. 정상회담 한달여 뒤에 열린 1차 장관급회담(2000년 7월31일)에서 “경의선 철도의 끊어진 구간을 연결하고, 이를 위한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협의하기로 한다”고, 2차 장관급회담(2000년 9월1일)에선 “서울-신의주 사이의 철도를 연결하며 문산-개성 사이의 도로를 개설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9월 중에 가지고 착공식 문제 등을 협의한다”고 합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철도 연결은 “경의선부터”라는 데 남북의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2002년 4월5일 김대중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임동원은 “남북 사이의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동부에서 새로 동해선 철도 및 도로를, 서부에서 서울-신의주 사이의 철도 및 문산-개성 사이의 도로를 빨리 연결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이전의 남북 협의·합의에 등장하지 않던 “동부에서 새로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이라는 문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해선은 김정일 위원장이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동해선 철길도 연결하자”는 자신의 제안에, 임동원 특사가 “좋은 구상이지만 남쪽에는 아직 ‘동해선’이 없으며 강릉에서 비무장지대까지 약 130㎞ 구간에는 철도가 없다”며 난색을 표하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중국 일변도의 경의선만 중시할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도 고려해 동해선 연결을 추진해야 해요. 중국과 러시아를 함께 끼고 나가야 해요. 서쪽의 경의선을 중국횡단철도와, 그리고 동쪽의 동해선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하면 조선반도가 ‘평화지대’가 될 수 있어요. 부산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중국횡단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물동량이 오가는데 어떻게 여기서 전쟁이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임동원, <피스메이커> 473~474쪽)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은 ‘냉전의 외딴섬’으로 고립된 대한민국을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허브로 바꾸려는 ‘철의 실크로드’ 구상의 알짬인데, 날로 심각해지는 ‘중국 의존’을 동해선 연결 등을 통한 러시아와 협력 강화로 균형을 잡으려는 김정일 위원장의 고민·전략과 무관치 않았던 것이다.
남북은 2002년 9월17일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동시 착공식을 치렀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25일 취임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한반도가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은 것은 20세기의 불행한 유산입니다. 21세기에는 세계를 향해 평화를 발신하는 평화지대로 바뀌어야 합니다.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동북아의 평화로운 관문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부산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사서 평양, 신의주, 중국, 몽골, 러시아를 거쳐 유럽의 한복판에 도착하는 날을 앞당겨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10월 김정일 위원장과 평양 정상회담에서 “문산-봉동 간 철도 화물 수송을 시작”(10·4 정상선언 5조)하기로 합의했다. 남북 정상이 약속한 지 69일째인 2007년 12월11일 경의선 남쪽 최북단 도라산역과 북쪽 최남단 판문역 사이 남북 화물열차가 정기 운행을 시작했다. 주 5회(토·일 제외) 정기 운행하며 주로 개성공단 관련 원자재와 생산품을 실어날랐다. 한국전쟁 이후 사상 첫 남북 종단 화물열차 정기 운행이다. 이 화물열차는 2008년 11월28일까지 모두 222회(왕복 444회) 운행하며 55TEU(1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에 이르는 화물을 날랐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남북 종단 화물열차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남북관계 악화 유탄을 맞아 정기운행 354일째인 2008년 11월28일을 끝으로 더는 남과 북 사이를 오가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1조) 하고,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금년(2018년)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2조1항) 약속했다. 2018년 12월26일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현대화 착공식이 열렸다.
그러나 남과 북 8천만 시민·인민의 ‘한반도 종단 철도·도로’의 꿈은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1월5일 동해선 남쪽 유일의 단절 구간인 동해북부선(강릉-제진 사이 112㎞) 철도 연결 착공식에서 “우리의 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강릉-제진 구간에 철도가 놓이면 남북 철도 연결은 물론 대륙을 향한 우리의 꿈도 더욱 구체화할 것”이라 외쳤으나, ‘북핵’을 이유로 미국이 놓은 ‘제재의 덫’을 끝내 벗어던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