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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경학적 전략의 핵심은 기업이다

등록 2022-06-23 18:34수정 2022-07-14 17:50

먼저 기업이 자본주의 자기진화 과정의 주체임을 인정해주자 . 진화는 혼자만 독식하겠다는 탐욕은 억제하되 , 다 잘살게 해보자는 욕망은 살려주는 데서 이루어진다 . 예를 들어 부자 (법인세 ) 증세를 주장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부를 키우는 투자세액 공제는 장려해줘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열린편집위원의 눈] 김경식 | ​ 고철(高哲)연구소장·전 현대제철 기획실장

기업에 1:10:100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자동차의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에 문제가 있어 소비자가 수리를 하는 데 100의 비용이 든다고 하면, 이를 자동차 제조 과정에서 미리 조정하면 10의 비용만 들고, 그 이전 자동차 설계 단계에서 문제점을 미리 보완한다면 1의 비용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1970~80년대에 현대자동차서비스는 큰 수익을 냈다. 국내 자동차의 품질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 자동차를 수리하러 오는 이들이 줄지었기 때문이다. 1974~87년 이 회사 사장을 지내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은 당장은 돈을 잘 벌지만(100), 장기적으로는 완성차 품질 개선(10과 1)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1999년 현대차그룹 회장이 되자마자 품질경영을 선언한 이유다. 대개 ‘3년 3만마일’ 무상보증이 일반적이던 미국 자동차업계에서 현대차가 ‘10년 10만마일 ’로 대폭 늘리고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오늘날 세계적인 위상을 얻을 수 있게 된 출발점이라고 본다.

지난 5월 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기간에 숙소인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미 대통령이 한국 경제인을 단독 면담했다. 투자 유치에 다급한 바이든 행정부의 처지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어쨌든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날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한 뒤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관련 투자 외에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달러 (약 6조 3천억원 )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회견은 미국 백악관 의전 절차에 따라 백악관 휘장이 달린 연설대에서 했다. 정의선 회장 대에 이르러 현대차그룹은 디자인 경영으로 레벨 업 된 뒤 , 친환경 모빌리티 등 가치지향 경영 속에서 미국의 지경학 (Geo-economics)적 전략 파트너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우리 기업과 노동자들의 오랜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오늘날 우리 삶의 방식은 대부분 해방 직후에 결정됐다. ‘힘이 없어서’ 일방적으로 남북으로 분단당했다. 토지개혁 필요성에는 남북 모두 인정했으나,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지주 활동의 물적 토대를 제거했고,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지주가 산업자본으로 성장해나갈 길을 터줬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남북한의 현실은 당시 선택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핵심은 기업의 존재와 역할의 차이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듯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른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 이면에 어두운 면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진보진영에서 지적하는 족벌의 경제력 집중과 사익 편취 (일감몰아주기) 등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지난 3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진보적 언론 및 시민단체 구성원들과 교류했다. 그런데 그런 교류 때마다 많은 이들이 기업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느꼈다. 또한 현상 (100)에는 편향적으로 비판하면서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 (10과 1)은 논의조차 하기 싫어했다. <한겨레>는 최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는데, 부자감세, 총수, 재벌, 대기업 특혜 같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기사를 읽다 보면 대기업과 재벌을 구분하고 있는지, 족벌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제는 100을 줄이기 위해 10과 1에 대해서도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 이를 국민 주주로 출범한 진보언론의 대표 <한겨레>가 주도해주면 좋겠다.

먼저 기업이 자본주의 자기진화 과정의 주체임을 인정해주자. 진화는 혼자만 독식하겠다는 탐욕은 억제하되, 다 잘살게 해보자는 욕망은 살려주는 데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부자 (법인세) 증세를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를 키우는 투자세액 공제는 장려해줘야 한다. 사익 편취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배경인 상속세 완화와 묶어서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려면 일부 이기적 극단주의 단체에 대해서는 비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더는 힘이 없어 우리의 운명을 지배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정학 리스크는 지경학적 전략으로 극복할 수 있고 그 주체는 기업이다. 그 기업은 우리의 노력으로 견제하고 성장시킬 수 있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8명 열린편집위원들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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