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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인어른은 코스모스였다

등록 2022-06-16 18:04수정 2022-06-17 02:35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직원들이 자기 사진 안 쓰고, 이상한 캐리커처나 보정된 사진 쓰는 것이 저는 참 보기 싫습니다.”

나와 만났던 대기업 경영진들이 자주 했던 말이다. 사내 정보시스템이나 업무용 메신저 등에 올리는 프로필에 보정하지 않은 정면 사진만 쓰도록 하는 기업들이 적잖다.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다. 왠지 뒤로 숨는 것 같아서 안 좋게 보인다. 장난스러워서 싫다. 이런 이유를 주로 언급한다. 그런 기업 경영진과 만나면, 저녁에 명함을 스마트폰에 입력한 뒤 내가 습관처럼 확인해보는 것이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그분의 메신저나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올라온 사진을 찾아본다. 나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선배이신 분들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이 나타난다. 꽃, 산과 같은 자연의 풍경을 프로필에 쓰는 분들이 많다.

내 장인어른도 비슷하셨다. 생전에 장인어른께서는 코스모스 사진을 프로필로 쓰셨다. 이유를 여쭤보니, 장모님과 연애하던 시절에 함께 걸었던 코스모스 길이 떠올라서 그러셨단다. 모 기업 회장님은 본인이 낚아올린 거대한 대방어를 프로필 사진으로 쓰셨다. 장인어른이 코스모스와 닮지는 않았다. 코스모스라기에는 좀 우락부락한 모습이셨다. 그 회장님의 입이 좀 크기는 했지만, 얼굴이 대방어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코스모스, 대방어를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할까? 자신의 겉모습과 닮아서가 아니라, 본인이 동경하는 무언가, 본인의 마음 깊이 담긴 무언가를 상징하기에 쓰는 것이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캐리커처나 보정된 사진도 동경심과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 사람 이름을 얼굴과 일치시켜 확인하는 용도라면, 보정하지 않은 실제 사진이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속을 드러내는 것은 증명사진이 아니라 오히려 캐리커처나 보정된 사진이다.

메타버스 세계에서 사용자들은 아바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아바타는 산스크리트어로 하늘에서 내려온 이를 뜻한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신이 인간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본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말이다. 신이 자신의 물리적 모습을 바꿨듯이,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아바타로 변해서 다른 이들과 어울린다. 그런 아바타가 우리를 더 깊고, 넓게 연결해줄 수 있다면, 그 모습이 무엇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필자가 수업에서 학생들과 꼭 해보는 작업이 있다. 학생들에게 본인을 상징하는 아바타를 그려보라고 시킨다. 몇가지 색상 펜을 가지고 에이(A)4 용지 위에 그림을 그리게 한다. 이때 한가지 단서를 추가한다.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아바타를 만들라고 한다. 처음에는 당황한 얼굴이지만,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열심히 펜을 움직인다. 반려동물, 음식, 나무, 바위에서부터 바람, 구름, 햇살까지 꽤 다양한 아바타가 나타난다.

왜 그런 아바타를 그렸는지 학생들에게 묻는다. 동시에 나무를 그린 두 학생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얘기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다. 어떤 이는 나무와 같이 굳건해지고 싶다며 나무를 그렸고, 다른 이는 변화 없이 정체된 자기 삶을 나무에 빗대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나는 그들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보게 된다. 수업시간이 아닌 과거와 미래의 그들을 상상하게 된다. 학생들과 나는 아바타를 통해 좀 더 가까워지게 된다. 당신이 사용하는 아바타, 메타버스 속 친구들이 사용하는 아바타를 한번씩 들여다보면 좋겠다. 그 아바타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들여다봤으면 싶다.

재작년 여름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보며 장인어른 생각이 났다. 코스모스를 가을꽃이라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6월부터 피는 꽃이란다. 수십년 동안 내게 가을꽃이었던 코스모스가 장인어른 덕분에 이제 한계절 먼저, 여름부터 찾아온다. 올해도 곧 코스모스를 만날 듯하다. 내게 여름 코스모스는 장인어른의 아바타이다. 장인어른은 여름에 핀 코스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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