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이명석 | 문화비평가
팥이 당겼다. 누군가에겐 술, 고기, 커피가 당길 그런 순간이겠지. 뻣뻣한 사람들과의 긴 회의를 마치고 원고를 달리기 위해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이 짧은 휴식을 채워줄 달콤한 팥이 간절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건너편의 붕어빵 트럭은 사라지고 없었다. 예상 못했던 건 아니다. 봄이 끝날 무렵 떠나고 쌀쌀한 바람이 불면 돌아오곤 했으니. 나는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물고 시멘트 계단에 앉아 생각했다. 붕어빵 트럭은 여름이면 뭘 하고 지낼까?
“진짜 붕어를 낚으러 간겨.” 내 마음의 물음을 들었는지, 마트 옆에서 장기를 두던 할아버지가 마음의 답을 해왔다. “그 트럭을 끌고 강이며 호수며 돌아다니며 붕어도 낚고 잉어도 낚고 마나님과 고아 먹고 안 그러겠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미래의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며 학원에서 수험서를 들추던 취준생이 끼어들었다. “비수기를 낭비하는 건 경영인으로선 낙제죠. 아마도 전국의 농장을 뒤지며 싸고 좋은 팥을 찾고 있을 겁니다. 팥은 6월에 파종해 10월에 수확하거든요.”
“팔자 좋은 소리 하네.” 밤낮으로 마을의 후미진 곳을 찾아다니며 재개발 바람을 넣는 부동산 사장이 혀를 찼다. “천원에 세개짜리 붕어빵을 팔아서 뭐가 남겠어? 여름엔 해수욕장 가서 팥빙수라도 팔아야지.”
나는 장기 할아버지의 낭만적 해석을 따르고 싶었다. 붕어빵 트럭은 최단 시간에 최다 개수의 붕어빵을 생산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아저씨는 하루 종일 짐칸의 불판 앞에 쪼그려 앉아 밀가루 물을 붓고 팥을 넣고 길게 줄 선 사람들에게 빵을 건네주었다. 화장실과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 수 없었다. 딱 한번 일어서는 걸 보았는데, 가스통 배달원에게 고무줄로 묶은 천원짜리 뭉치를 건네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혹사한 몸이니 회복에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한켠엔 걱정스러운 의문이 피어나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나 쉬어도 될까?
부러움과 걱정, 단내와 탄내가 뒤섞인 묘한 냄새. 언젠가 나는 그 냄새를 진하게 맡았던 적이 있다. 한달 정도 스페인을 가려고 일을 정리하면서 방송사 드라마국장을 만났다. “무슨 여행을 한달씩이나 가? 갔다 와도 일이 있나?” 직장상사도 아니고 그냥 한달에 두번 회의를 하는 사이에 불과했지만, 그는 꾸짖듯이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만은 아니었다. 프리랜서는 언제든 쉴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 이 직업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곧 잊힌다. 여행을 다녀와 일거리를 회복하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든다. 그는 정말 나를 아껴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우리는 자신은 물론 남의 휴식에 관대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쉴 틈 없이 공부에 매달리고 선행하여 앞지른 무리 속에서 또 잠을 줄이고 내달린 사람들이 이끄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보다 낮은 처지인 사람들이 쉬는 꼴을 못 본다. 대학의 청소 직원들은 남의 눈을 피해 화장실 안 비품 칸에 쪼그려 쉰다. 아파트 경비원 초소에 에어컨을 설치하자 동대표들이 자기 허락을 받지 않았다며 철거하라고 한다. 대기업 체인 빵집의 제빵기사들이 점심시간 1시간을 편하게 쉬지 못하고, 아파도 연차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민원, 욕설, 호통에 시달리는 기피 부서에서 매달 100시간 이상 초과 근무하던 젊은 공무원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까지 듣는다.
인생이 붕어빵이라면 그 안엔 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팥은 휴식, 휴일, 휴가라고 부르는 시간 동안만 자란다. 빵의 크기에만 집착하는 사회는 퍼석한 밀가루만 날리는 기이한 공갈빵을 만들어낼 뿐이다. 내가 기다리는 붕어빵은 작지만 팥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여름의 긴 휴가가 그 팥을 키우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