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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정의당을 위한 변명

등록 2022-06-16 14:08수정 2022-06-17 02:37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논의를 위해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논의를 위해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권일ㅣ사회비평가·<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글 쓸 때 망설이지 않고 에두르지도 않지만, 이번엔 망설였다. 정의당 당원도 아닌데 말해도 될까? 20년 넘게 진보정당 당원이었고 정의당보다 왼쪽에 있던 사람으로서, 동료 정당에 왈가왈부하는 건 주제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운을 떼는 것은 정의당에 대한 고민들이 한국 사회의 진보와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왜 ‘망했는가’? 많은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큰 틀에서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기득권 거대 양당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민주당 식민지’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는 흔하게 쓰인 ‘민주당 2중대’ 비유와는 결이 다르다. ‘2중대’는 시키는 대로 하는 조직이므로 일말의 주체성도 없다. ‘식민지’는 다르다. 본국과 따로 떨어져 있지만 본질적으로 종속돼 있다.

평소 민주당과 대립각을 종종 세우는 정의당은, 결정적 순간 ‘민주당 식민지’가 되곤 했다. 대표적 예 중 하나가 조국 사태다. 청년, 약자,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해왔던 정의당이 놀랍게도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두둔한 것이다. 이후 정의당 지지율도 떨어졌는데, 지지율 수치보다 중요한 건 상징성의 추락이었다. ‘장기 조국 사태’라 할 정도로 사태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이 패착은 회복 불가능했다. 이후 정의당이 아무리 ‘공정’이나 ‘평등’을 말해도 대다수 시민들은 비웃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공정하지 않다. 과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진보정당이 독자노선을 강하게 보일수록, 혹독한 대가를 치른 선례들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0.6%포인트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자 서울시장 선거를 완주했던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성장세였던 진보신당의 기세도 꺾였다. 반면 ‘종북’ 논란을 일으킨 당시 잔류 민주노동당 세력은 야권연대에 결합하며 이득을 쏠쏠히 챙겼다.

막연히 ‘진보’를 자임하는 시민들은 말한다. “왜 진보좌파는 단일 정당을 만들지 못하고 갈등과 분열만 일삼나!” 지당한 말씀이다. 차이를 잠시 유보하고 ‘큰물’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왜 그걸 못 할까? 그걸 못 한 이유는, 같은 당 사람들 정보를 북조선에 넘기고(‘일심회’ 사건) 경선 조작을 일삼는(통합진보당 사태)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견·이념이 다른 게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과 최소한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함께 뭔가를 도모하는 게 불가능하다. 사회 전체로 보면 극소수지만 좁은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이들이 다수라는 게 문제다. 원래 밖에서 훈수 둘 때는 게임이 참 쉬워 보이는 법이다.

내적 요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위성정당’ 사태에서 또다시 드러났듯 진보정당의 성장을 막는 절대 조건은 양당 독점-지대 추구 정치 시스템이다. 어떤 면에서는 정의당이 이 정도라도 하는 건 당원과 지도부의 기량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기로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양적 성장이 없으면 결국 사람만 소진돼 떨어져나갈 뿐이다.

혹자는 정의당이 ‘정체성’ 의제와 ‘여의도 고공정치’에 매몰돼 지역과 현장에 소홀해서 망했다고 주장하지만,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평가다. 페미니즘, 차별금지법 등 정체성 정치에 정의당은 당연히 몰두해야 한다. 오히려 지금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의당은 계급, 젠더, 생태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게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점이 없지 않겠으나 정의당 당원들은 헌신적이며 지역 의제에도 상당히 밀착해 있다. 물론 이른바 ‘중앙’과 ‘현장’을 매개하는 조직이 약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원내 활동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생겼지만, 이는 당의 기본 체질이기도 해서 쉽게 해소되긴 어렵다.

그런 면에서 지역 의제에 집중하는 ‘지역 정당’ 논의에 눈길이 간다. 이상한 한국 정당법 때문에 지금은 불법이지만, 지역 정당은 서울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은 중앙집중형 정당이 아닌 지역분권형 정당도 미래 모델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확실히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강조하고 싶다. 정의당 사람들이 정의당보다 훨씬 중요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어려운 길을 택했던 그들이 조금 덜 아프기를, 그래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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