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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석열 정부의 거꾸로 가는 인플레 대응

등록 2022-06-15 19:28수정 2022-06-16 02:4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전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정점을 지나 곧 꺾일 것이라는 애초 기대와 달리 지난달 8.6%를 기록하며 41년 만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금리인상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환율, 주가, 시장금리 등 국제금융 지표들이 요동치고 있다. 이제는 언제쯤 이 물가상승세가 꺾일지 점치기도 어렵게 됐다. 우리 인플레이션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5월 물가상승률은 5.4%로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6월에는 6%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최고치다.

이런 기록적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첫 경제정책은 59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충격이 극심했던 2020~21년을 제외하면 지난 10여년 추경 규모는 대체로 5조~10조원 안팎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윤 정부의 추경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 위험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많은 우려에도 대규모 추경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3월 방역제한 조처가 전면 해제되면서 억눌렸던 소비가 분출되고 물가를 자극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여기에 다시 기름을 부은 것이다.

시기도 문제지만 규모는 더 문제였다. 명목은 소상공인에게 온전한 손실보상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 50조원대라는 막대한 규모의 추경이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50조원이라는 숫자는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여당이 전년도 초과세수를 이용해 자영업자에게 30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며 추경을 편성하자, 윤석열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1천만씩 지급하기 위해 50조원 추경을 하겠다고 맞대응했다. 선거기간 양당이 보여준 재정 포퓰리즘의 극치였다. 세수가 더 걷혔으니 손실 규모에 관계없이 자영업자에게 300만원씩 일괄 지급하겠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당선되면 거기에 더 얹어 1천만원까지 지급하겠다는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터무니없이 들렸다. 당시 경제학자 출신 야당 의원조차 타당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 약속은 윤석열 후보의 제1호 공약이 됐다.

그래도 내 주위 전문가들은 모두 선거기간의 헛공약일 뿐 대통령이 되면 실제로는 지키지 못하리라고 예상했다. 추경 규모가 전례 없이 큰데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선자가 인수위원회에 공약 준수에 노력하라고 지시하고, 정부가 출범하고 이틀 뒤 기획재정부가 올해 초과세수가 53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하는 순간, 이 터무니없는 공약을 밀어붙일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불과 몇달 전 야당 의원으로 300만원 일괄 지급을 비판했던 신임 경제부총리가 결국 최대 1천만원 지원책을 포함한 50조원대 추경안을 발표했다. 대통령 후보가 아무런 근거 없이 뱉은 숫자가 인플레이션 시대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으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추경안은 지방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 국회를 통과했고 수혜 가구는 우리나라 총가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대략 600만가구에 이르렀다. 아마도 민주화 이후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사상 최대 재정 포퓰리즘으로 기록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시기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상 규모의 적절성 평가는 쉽지 않다. 지난해 7월 이후 정부는 방역제한 조처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에게 매출 감소로 인한 영업이익 감소분을 보상해주고 있다. 영업이익뿐만 아니라 인건비나 임차료 같은 고정비도 보전해주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제도화된 손실보상제가 실시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손실보상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될 때마다 4차례에 걸쳐 업체당 약 1천만~3천만원 규모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이번에 추경으로 지급하는 지원금은 세수가 남아 기존 손실보상제와 별도로 추가로 지급하는 것이다. 적절한 보상 절차가 있음에도, 선거를 앞두고 피해 규모 산정도 없이 일정액을 일괄 지급한 사람들이 무슨 염치로 재정건전성과 인플레이션 대응을 운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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