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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민참여재판으로 몰려드는 성범죄

등록 2022-06-14 18:09수정 2022-06-15 02:39

국민참여재판을 위해 담당 검사가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참여재판을 위해 담당 검사가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임재성 |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2008년부터 시행 중인 국민참여재판(참여재판)은 시민들의 사법 참여를 확대하고,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법감정에 부합하는 재판을 하자는 사법개혁의 취지에 따라 도입됐다. 최근 참여재판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하다. 그런데 참여재판 15년 역사에서 두드러진 점 가운데 하나는 성범죄에서의 높은 무죄율이다. 왜 일반재판과 참여재판 사이에, 유독 성범죄 사건에서 큰 간극이 발생하는가? 이 간극에 참여재판의 본질 또는 한계가 담겨 있을 수 있지만, 면밀한 분석이나 연구는 없었다.

2008~2017년 4대 범죄(살인, 강도, 상해, 성범죄) 일반재판 무죄율은 1.4%였다. 같은 기간 참여재판 무죄율은 8.0%였다. 일견 ‘참여재판 무죄율이 높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일반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는 ‘자백 사건’ 비율이 압도적이다. 반면 참여재판의 경우 68% 정도가 범죄를 부인하는 사건이다.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들이 참여재판에 모이는 것이다. 즉, 모수의 성격이 달라, 참여재판의 높은 무죄율을 제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없다.

성범죄는 다르다. 2008~2017년 참여재판에서 성범죄 무죄율은 18%였다. 같은 시기 참여재판에서 이뤄진 4대 범죄 무죄율 평균(8%)의 2배 이상이다. 일반재판 성범죄 무죄율 2.4%에도 비할 바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참여재판은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인식은 법조 실무에서 보편적이다. 또한 적극 이용한다. 그 결과 2018년, 2019년, 2020년 참여재판 성범죄 무죄율은 43.3%, 28.5%, 48%에 달했다.

물론 유죄가 맞고 무죄가 틀린 것은 아니다. 기준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보통 시민들의 상식적인 판단이 맞다’는 쪽에 선다면, 현재 검사와 판사는 일부 억울한 사람들을 기소하고 유죄 판결하고 있는 셈이 된다. 다른 기준에서는, 배심원들이 지나치게 관대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직접 형사실무를 하는 필자로서는 후자에 좀 더 설득력을 느낀다.

배심원들이 성범죄 피고인에게 관대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잘못된 통념이 작동하는 것일 수 있다. 배심원 판단은 권고적 효력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90% 이상 배심원 판단에 따라 판결이 선고된다. 배심원과 법관의 판단 불일치는 예외적인데, 그 불일치 역시 성범죄 사건의 비율이 가장 높다. 2008~2016년 성범죄 사건 14건에서 불일치가 확인되는데, 그중 12건이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재판부 유죄로 판단이 갈렸다. 서울대학교 홍진영 교수는 2017년 논문에서 그 불일치 이유로 “사회 일반에 만연한 강간통념”을 검토했다. 배심원과 판사의 판단이 달랐던 판결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피해자의 직업이 유흥업 종사자일 때, 피고인과 피해자가 과거 사귀는 관계였을 때 등이었기 때문이다. 애써 밀어낸 ‘피해자답지 않다’는 통념이 ‘국민 법감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다시 침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위 연구는 질문한다.

관대함의 또 다른 배경으로 ‘까다로운 증거’ 문제도 있다. 대부분 가해자-피해자만 있는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그 특성상 진술 이외에 다른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가 다수다. 이때 진술 일관성이라는 까다로운 쟁점이 등장한다. 인간의 말이라는 것은 진술 방식, 시점, 질문의 내용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진술 일관성에 대한 판단은 법률가들에게도 어려운 부분이다. 일반 시민들이 갑자기 배심원으로 선정돼, 하루이틀 새 까다로운 증거만으로 유무죄를 단정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의미하지 않은 작은 차이에도 쉽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로 기울기 쉽다. 이 틈새가 장기간 방치되었고, 성범죄 피고인들은 틈새로 몰려들었으며, 결국 50%에 가까운 무죄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는 국가형벌권 발동의 최후성을 이야기할 때는 옳은 명제이지만, 현실에서 형사재판의 의미는 훨씬 광범위하다. 무죄를 받는 순간 행위 자체가 없었던 것이 된다. 처벌 여부가 아니라 사실관계 전체가 달라진다. 좀 더 나은 재판을 위해 도입한 국민참여재판이라면, 15년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범죄 무죄율에 관한 실증적 검토와 필요한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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