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지난달 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이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 했지만 사실 인플레이션은 계급과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플레는 서로 다른 계급과 계층, 그리고 기업들 사이에 상이한 소득분배 효과를 미친다.
먼저 ‘인플레이션 불평등’에 관한 연구들은 물가 상승이 저소득층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소득층은 소비에서 생활필수품의 비중이 높으니 최근처럼 석유나 식품 가격이 많이 오르면 더 크게 타격받는다. 또한 고소득층은 가격이 오르면 같은 종류의 제품 중에서 더 값싼 제품으로 갈아탈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온라인쇼핑을 더 많이 하므로 인플레의 악영향을 덜 받는다고 보고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플레이션의 계급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은 임금 인상을 자제하라는 주장이다. 최근 경제신문들은 사설에서 임금발 인플레 악순환을 우려하고, 경제부총리도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하며 기업에는 규제 완화나 감세 등 지원을 약속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노동자의 임금총액은 전년 대비 6.4% 상승했다. 규모별로 보면, 3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상승률은 10.8%이지만, 299인 이하는 5%였고, 9인 이하는 3.8%로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도 낮았다. 반면 기업들은 지난해 경기 회복과 함께 수익이 크게 늘었다. 2021년 코스피에 상장된 12월 결산기업 영업이익은 전년도보다 74%가량 늘었고 순이익은 161%나 증가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결과’ 속보도 2021년 법인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이 크게 높아졌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전년도 5.1%에서 6.8%로, 매출액 세전 순이익률은 4.4%에서 7.7%로 높아졌다고 보고한다. 결국 대기업의 임금 인상은 이렇게 높아진 수익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인플레가 높아진 2021년 기업 이익이 급증하고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은 하락했다. 코로나19 이후 회복기의 인플레에는 과거 40년의 역사와 반대로 임금 인상보다 기업의 이윤 증가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 보고서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만 억제하면 취약한 노동자들의 삶을 악화시킬 것이다.
한편 임금발 물가 상승이 발생할 것인가는 확실치 않다. 최근 한국은행의 실증분석은 임금 상승 충격이 외식을 제외한 개인서비스 가격에만 유의한 영향을 미치고, 전반적인 물가에는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물가는 대외 변수 등에 큰 영향을 받고, 노동비용 상승의 일부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기업들 사이에도 다른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나 임금이 높아져도 납품 단가를 인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플레가 높아질 때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감소폭이 대기업의 3배에 달한다고 보고된다. 납품 단가 연동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최근 일본 정부도 하청기업의 비용 상승이 자동으로 납품 단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에 대응해 제약회사 등 독점기업들의 가격과 이윤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실에서 각 상품의 가격 상승은 서로 다르며, 독점 대기업들은 가격을 쉽게 올려 큰 수익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플레에 대응한 금리 인상도 노동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플레에 맞서 빨리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현재의 인플레는 주로 공급 쪽 문제와 관련이 크다. 따라서 급속한 금리 인상은 인플레 억제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경기를 둔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경기 둔화는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약화하고 임금 상승을 억눌러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다. 1980년대 미 연준 의장 폴 볼커가 인플레에 대응해 금리를 크게 올린 배후에도 이런 의도가 숨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변화와 함께 노동자들의 힘이 약해져 현재는 1970년대와 달리 임금-물가 상승 악순환의 가능성이 작아졌다.
현재의 높은 인플레와 보수적인 대응은 계급 갈등과 불평등 심화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인플레의 타격이 큰 취약계층과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급속한 금리 인상이 가져다줄 역효과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임금 인상을 억제해 인플레의 부담을 노동자만 짊어지게 하려 한다면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