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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수박 / 권태호

등록 2022-06-13 17:19수정 2022-06-14 02:38

“빨갱이 사상으로 말하자면 이북은 복숭아고 이남은 수박이요. 이남 중에서도 여기 전라도하고 경상도는 아주 특제 수박이요.”(소설 <태백산맥>)

일본 순사였다가 해방 후 벌교읍 경찰서장이 되어 ‘여순 사건’(1948) 이후, 빨치산 토벌에 나선 남인태가 ‘이북에서 월남한 순천경찰서 간부’가 한 말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겉은 푸르지만 속은 붉다’는 뜻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이 많다는 주장이다. 해방 이후 창간한 일간신문인 <독립신보>는 1947년 9월 “‘빨갱이’란 말이 유행이다. 공산당을 말하는 것인데 수박같이 겉은 퍼렇고 속이 빨간 놈이 있고, 수밀도 모양으로 겉도 희고 속도 흰데 씨만 빨간 놈이 있고, 토마토나 고추 모양으로 안팎이 다 빨간 놈도 있다. (…)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붉은 것은 기회주의자일 것이요”라 했다.

‘빨갱이’ 용어는 이후 오랫동안 쓰였으나, ‘수박’ 용어는 금세 사라졌다. 지난해 일부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내부 비판 목소리를 내는 민주당 의원들을 ‘수박’이라 부르며 다시 무대 위로 올라섰다. 과거 ‘위장 좌파’를 지칭하던 용어가 이젠 거꾸로 ‘위장 우파’를 상징한다. 민주당은 푸른색, 국민의힘은 붉은색이 상징색이기 때문이다. 논쟁이 본격화된 건 지난해 9월 민주당 대선 경선 때다. 호남 경선을 앞두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장동 특혜 의혹을 방어하면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을 향해 “수박 기득권자들”이라 했다. 이낙연 전 대표 쪽이 “(호남 비하) 일베 용어”라고 발끈하며 격화됐다. <한국일보>는 당시 ‘일베’ 글 전수조사를 통해, “일베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다”라고 확인했으나, 논란이 해소되진 않았다.

지방선거 이후 제2차 ‘수박’ 논쟁이 붙었다. 강성 이재명 지지층이 ‘이재명 책임론’을 펴는 일부 의원들을 ‘수박’이라며 맹비난했고, 그중 이원욱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에 수박 사진을 올리며 비꼬았다. 이에 이재명계 김남국 의원이 “계파 정치로 천수를 누렸던 분들”이라고 맞서는 등 감정싸움으로 치달았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수박’이란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 안 두겠다”고 공개 경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독립신보>는 당시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 규정짓는 그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자들이 민족 분열을 시키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라고 했다.

권태호 논설위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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