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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군수까지 대통령이 정해야 하나

등록 2022-06-12 19:57수정 2022-06-13 02:4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 투표안내 홍보조형물이 걸려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 투표안내 홍보조형물이 걸려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삼십여년 전 이런저런 이유로 유학을 떠나 내가 공부했던 곳은 평범한 미국 중부의 중소도시였지만, 도시 곳곳에 공원과 편의시설이 있었다. 당시 그걸 보면서, ‘아, 이게 바로 선진국이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 동네 자락길을 걸을 때면,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우리도 선진국이 됐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락길에는 두툼한 친환경 매트와 나무 데크가 깔려 있고, 곳곳에 쉬어가고 싶은 쉼터가 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쉽게 누리지 못할 호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시민의 일상을 책임질 “생활밀착형 일꾼”을 뽑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관심은 온통 중앙정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 있는 언론은 대선의 연장전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바꾸는 한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그저 듣기 좋은 말뿐이었다. 입후보자들의 선거공약을 무미건조하게 소개하는 것 말고는 선거 결과에 따라 누가 국정의 주도권을 쥘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지방선거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선거이니, 대선의 연장선으로 보지 말고 삶의 변화를 생각해 투표하는 게 중요하다”고, “정책 대부분을 지방이 주도하니, 지방선거가 더 중요해졌다”고 유권자에게 조언했다.

그럴까? 정말 지방선거 결과가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누가 되는지에 따라 달라져야 했다. 그리고 지방선거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지난 4년간 성과를 평가하는 심판장이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상식과 다르다. 유권자 대부분은 지난 4년 동안 단체장이, 지방의원이 주민을 위해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평가해 투표하지 않았다. 지역에서 열심히 주민을 위해 일한 일꾼도, 중앙정치의 폭격을 맞아 낙선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선거가 지방선거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아까운 단체장과 의원 여럿이 낙선했다.

왜 그럴까? 전문가의 말이 옳다면 지방선거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임에도, 그 중요성을 모르고 줏대 없이 중앙정치에 휩쓸려 투표하는 생각 없는 유권자가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중앙정치에 휩쓸리는 잘못된 지방선거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지방권력이 바뀌어도 주민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누가 돼도 큰 변화가 없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면. 친환경 매트와 나무 데크를 까는 일만으로는 주민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소소한 일상을 제외하면, 현재 분권체계 아래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주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권자가 지난 30년간 중앙정치에 휩쓸려 지방선거에 투표했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힘있는 자들이 지역의 유권자가 중앙정치에 휩쓸리는 선택을 하도록 지방자치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민 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정책과 자원 배분의 권한을 대부분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그래서 자기 삶이 온전히 중앙정치에 달려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똑똑한 유권자는 지방선거를 통해 중앙정치를 심판했던 것이다.

참담한 일은 지방정치를 통해 중앙정치를 심판해도 주민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 말처럼 지방선거 승리로 국정 동력이 확보됐으니, 윤석열 정부가 이제부터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더 잘 챙기라는 국민의 뜻”을 잘 받들까?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래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바뀌었다고 중앙정치가 평범한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2018년 6월에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했지만, 민주당의 압승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무관했다. 이번 국민의힘의 승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대 기득권 양당의 꼭두각시가 된 지방선거에 주민의 삶이 있을 자리는 없다.

여야 모두,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주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쟁의 장이 되기 바라는가?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삶의 중요한 일부를 책임질 수 있도록 중앙의 권한과 재원을 과감히 지방과 나누고 주민의 다양한 이해를 반영할 수 있게 선거제도를 민주적으로 개혁해라. 군수까지 대통령이 결정하는 이런 사이비 지방선거는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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