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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진보의 도그마와 콤플렉스

등록 2022-06-07 18:14수정 2022-06-08 02:38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읽기] 이원재 | LAB2050 대표

1997년 12월19일, 집에 배달된 <한겨레> 1면에는 커다란 글씨로 “김대중 당선”이라고 쓰여 있었다.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일어난 날이었다. 주변에 머물러 있던 진보적 정책 패러다임이 주류 무대 위로 올라온 순간이기도 했다.

그 뒤 25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놀라운 진보의 시대가 열렸다. 남북관계도 복지도 교육도 경제에서도 혁신이 이어졌다. 보수진영마저 진보 패러다임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게 됐다.

그런데 지금 진보 패러다임은 낡은 것으로 여겨진다. 왜 그럴까? 25년 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경직된 도그마들을 너무 고집해서 생긴 일 아닐까?

다섯 가지 대표적 도그마가 있다.

첫째, 탈원전이라는 도그마다. 반핵운동은 1980년대 이후 반미운동과, 이후 환경운동과 결합하면서 탈원전을 진보의 주류 원칙으로 부상시켰다. 하지만 원전이 화석연료보다 탄소배출이 적고 재생에너지보다 안정성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이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손을 잡고 탄소중립 동맹을 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둘째, 햇볕정책이라는 도그마다. 북한은 25년 전과 달리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햇볕으로 나그네의 외투는 벗길 수 있지만, 그의 주머니 속 수류탄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당분간 ‘긴장 속의 긴 평화’가 현실적인 목표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대북 정책 기조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셋째, 평등교육이라는 도그마다. 경쟁교육을 반대하는 정책 기조 탓에, ‘수월성’은 진보 교육에서 금기어가 됐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문제지만, 경쟁을 완화하려다 경쟁력이 낮아진다면 더 큰 문제다. 2000년 64만명이던 출생아는 지난해 26만명이 됐다. 적은 수의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도록 능력을 갖춰줘야 한다. 창의적이고 협력적이면서도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이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넷째, 지방분권이라는 도그마다. 진보는 지방분권에 앞장섰지만, 결과적으로 권력은 지역주민 대신 제왕적 시장·군수와 공무원들에게로 분산됐다. 중앙에서 대통령은 삼성에 투자를 구걸해야 하지만, 지역에서는 상인들이 군수에게 지원을 구걸하며 살아간다. 예전에 무시하던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 전직 국회의원들이 출마하는 모습은 이런 지형을 반영한다. 이제 지방자치단체 권한 늘리기는 잠시 멈추고, 진정한 주민자치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구조를 설계할 때가 된 것 아닐까?

다섯째, 공공부문 확대라는 도그마다. 진보는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를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셀 수 없을 만큼의 공공기관과 중간지원조직이 민간을 관리·감독하며 운영하는 나라가 됐다. 현장의 일손은 늘 부족한데, 행정과 감사 대응 업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이제 공공부문 개혁을 진보의 의제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한편 진보는 몇 가지 콤플렉스 탓에 근원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 소극적이기도 했다.

‘빨갱이 콤플렉스’가 대표적이다. 기본소득제 등 파격적 사회보장 확대 논의가 나올 때마다, 상당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재정 낭비’라는 공격을 걱정한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으로 비판받자 실패 원인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세금부터 깎아주기도 했다. 이런 반응은 재정 확대나 증세 주장은 사회주의자라며 공격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탓에 나온다. 민주화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몰리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이다.

‘경알못 콤플렉스’의 문제도 컸다. 정부가 내놓은 탄소중립 안에 대해서조차 ‘기업이 반대해서’ ‘현실성이 없어서’ 안 된다는 ‘이른바 진보주의자’들도 많았다. ‘진보는 경제를 모르고 성장에 반대한다’는 비판에 콤플렉스가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 진보의 존재 이유는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데 있다. 운전자가 경로를 유연하게 바꾸는 데까지는 승객들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목적지를 바꾸면 승객은 하차할 수밖에 없다.

콤플렉스에 휩싸여 목적지를 잊은 결과는 참혹하다. 진보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 해결은 오히려 멀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목적지를 잊지 말되 유연하게 경로를 설계하며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 과감한 전환이 없다면, 진보의 시대는 이대로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 다음 25년을 맞을, 새로운 진보의 탄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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