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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재벌의 자유, 윤석열의 자유 / 박현

등록 2022-06-07 18:11수정 2022-06-08 02:38

유럽 출장길에 오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최근 재계는 이 부회장이 경영 활동에 불편을 겪고 있다며 그의 사면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유럽 출장길에 오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최근 재계는 이 부회장이 경영 활동에 불편을 겪고 있다며 그의 사면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박현 | 논설위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솔직해서 참 좋다. 대부분의 재벌 총수 일가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데, 그는 다르다. 에스엔에스(SNS)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재계 담당이던 기자 초년 시절 그의 에스엔에스는 재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창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재벌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그는 이번에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취임식에 초청받은 그의 인스타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윤 대통령이 취임연설을 하는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올라왔다. “자유! 자유! 자유! 무지개!!”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무려 35차례나 언급한 ‘자유’라는 단어에 감명받은 것 같았다. 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지난 2일엔 좀 도발적인 글이 올라왔다. “야구 이기기 참 좋은 날이다 필승!! #ㅁㅕ......ㄹ” 댓글엔 그의 ‘멸공’ 발언을 추앙하는 글들이 쏟아진 걸 보니 해시태그가 ‘멸공’을 의미한 게 분명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마음껏 #멸공 하세요. 부회장님”이라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올해 초 잇따른 멸공 발언으로 회사 주가마저 급락하자 더이상 멸공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다. 보수 여당의 승리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일까.

지난달 25일엔 난데없이 재벌 그룹 네곳이 약속이나 한듯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통상 이런 발표는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회동이 있을 때나 나오는 것이다. 이런 행사도 없었고 언론에도 사전 공지가 없었던 터라 어리둥절했다. 삼성은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하고 8만명을 고용한다고 했다. 투자 배경으로 “선제적 투자와 차별화된 기술력, 새로운 시장 창출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주도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는데, 궁금증을 풀기엔 부족했다. 며칠 새 재벌·대기업 10여곳도 뒤를 따랐다.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갑자기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한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 왕성하게 살아난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물론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과거 정부에서도 재벌들은 이런 계획을 내놨다. 이전 발표에서 얼마나 늘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삼성의 경우 숫자에 너무 현혹될 필요는 없다. 2년 전 발표 때보다 연간으로 따지면 투자는 10조원, 고용은 2667명 늘었을 뿐이다. 어쨌거나 청년 고용이 어려운 이 시국에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린다니 좋은 일이다. 여기에 딴지를 걸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궁금증은 지난 2일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경제 6단체장의 회동에서 풀렸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는 기업인의 도전정신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며 “기업인들이 세계 시장에서 더 활발히 뛸 수 있도록, 현재 해외 출입국에 제약을 받는 등 기업 활동에 불편을 겪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같은 기업인들의 사면도 적극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인세·상속세 인하와 주 52시간제·중대재해처벌법 개선도 회장들의 요구 목록에 들어 있었다. 아, 이거였구나! 예상 못 했던 건 아니지만 새삼 재벌들의 순발력과 집요함에 놀랐다. 특히, 재벌 총수 사면 건은 불과 한달 전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안이다. 문 대통령도 검토했으나 명분을 찾지 못했던 거다. 이제 ‘재벌들의 세상’이 열린 것으로 여긴 걸까. 돈으로 못 얻을 건 없다는 생각일까.

유난히 공정과 상식, 법치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과연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그가 말한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일지. 그는 취임사에서 마치 ‘자유와 시장’이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중요한 문제로 지목하면서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재벌들이 경영 활동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족쇄’들을 풀어줘야, 경제가 성장하고 양극화도 완화된다는 한물간 ‘낙수 이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 막스 베버는 일찍이 사회 불평등이 경제적 부, 사회적 위신, 정치권력의 소유 여부에 기인한다고 갈파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 부의 격차가 핵심이다. 거대한 부를 가진 이들이 정치권력과 위신까지도 돈으로 사는 게 다반사이니 답은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는 잊지 말자. 그렇더라도 시민들의 존경과 마음까지 살 수는 없다는 것을.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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