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왼쪽 사진)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얼굴화가 정은혜씨(오른쪽 사진 오른쪽). 김영희 기자, 티브이엔 제공
김영희 | 논설위원실장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선거부터 지방선거까지 지난 수개월간 유권자 표를 향한 거대 정당들의 ‘구애’는 뭐든 다 내줄 듯 때론 맹목적으로 보였다. 그 시간, 달라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한켠에서 계속됐다.
발달장애 자녀와 가족의 죽음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제 임계점이 아닌가 싶다. 2020년 이후 알려진 사건만 20건이다. 올해 들어서도 3월과 5월 부모가 장애 자녀의 삶을 끊은 사건이 각각 같은 날 두 건씩 발생한 데 이어, 지난 3일 경기도 안산에서 홀로 20대 발달장애 형제를 키운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30살 발달장애 자녀를 둔 지인은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아들 표정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본인들도 다 안다. 자신이 엄마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하는 존재인가 생각할 거다.” 분명한 것은 이런 악순환을 내버려두는 지금 정치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정상의 정치’ 속에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도드라지는 존재다. 지난 3월 소속 당 대표가 연일 비판하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시위 현장을 찾아 장애시민과 비장애시민에게 사과하며 무릎 꿇었고, 4월19일 장애인과 부모 등 556명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삭발하는 집회 현장에 갔다. 지난달 말엔 의원회관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등을 촉구하는 전시회를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 3명과 공동주최했다. 선천성 시각장애를 가진 피아니스트이자 전국장애인체전 탠덤사이클 선수이기도 했던 그가 2년 전 보수 위성정당의 인재영입 1호가 됐을 때 요즘과 같은 행보를 상상한 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지난주 만난 김 의원은 “세상을 떠난 중증장애인을 두고 어차피 오래 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댓글들도 있다. 그런 걸 당연시하는 현실에 누군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이 서울 삼각지역에 마련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에서 그는 “중학교 때 우리 엄마도 ‘너 죽고 나 죽자’라는 말을 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그 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었다. 소리 없이 죽어간 친구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죽음을 추모하고 가족들 고통에 안타까워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는 좀체 생각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이 그의 발언으로 또렷이 떠올랐다.
그가 전장연이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다. “돌봄에 지친 가족 이야기 속에 장애인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된다. 돌봄이 아니라 ‘지원’이란 관점이 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스스로 ‘잠재적 가해자’라고 하는 표현이나 ‘24시간 국가책임제’ 구호도 우려스럽다. 가족들도 못 견디는데 듣는 사람들 숨이 턱 막히지 않겠나. 장애인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건 힘들다는 인식을 더 강화할 수 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주거 형태’를 지향하면서도 ‘기한’을 정해놓고 모든 시설을 없애는 방식의 ‘탈시설’ 법제화엔 회의적인 것도 ‘탈시설론자’들과 다르다.
물론 반박이 따를 수 있다. 2018년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이 선언됐지만, 17만 성인 발달장애인 가운데 이 계획으로 6시간 주간활동지원을 새로 받는 대상은 1만명 정도다. 주간보호시설·직업재활을 합해도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부모가 숨지면 발달장애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실태파악도 되지 않는 나라에서 ‘국가가 왜 존재하느냐’는 물음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의원에게 주목해야 하는 건 생각이 다르다는 점보다 ‘생각이 다름에도’ 찾아간다는 점일 게다. 그들의 요구가 당장 실현될 수 없더라도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최대한 정책 수립에 참여시킬 때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과 신뢰가 생긴다는 평범한 진리를 정치가 외면한 지 오래다. ‘입맛’에 맞는 단체들만 만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장애인 단체를 이념으로 가르는 집권당의 모습 속에서 김 의원의 행보는 ‘정치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고 있는 건지 모른다.
최근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초상화가 정은혜씨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이 화제가 됐다. 극중 인물처럼 “장애인을 처음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운 적 없는” 우리에게 드라마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한번만 더 귀기울이면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들과 살 수 있다고 잔잔하게 말을 걸었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환대에 의해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사람, 장소, 환대>) 절망에 대한 공감을 넘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힘이 필요하다. ‘환대’의 사회를 떠올리게 한 예지씨와 은혜씨, 이제 비정상의 정치가 바뀔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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