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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청년들의 어깨동무

등록 2022-06-05 18:40수정 2022-06-06 02:36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최근 지역의 여러 청년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지역 대안 언론에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2030 청년 후보들을 소개하느라 진보정당 소속 청년들을 만났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줄 알면서도 진보정당 이름으로 선거에 나선 청년들이다. 당 안팎의 사정을 따져 출마를 결정했겠지만,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거리에서 후보 명함을 내밀면 ‘아이고, 여기는 국민의힘인데, 젊은 사람이 왜 하필…’이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20대, 30대 청년들에게는 선거비용도 적잖은 부담이었다. 짐작하겠지만 모두 낙선했다. 청년 후보뿐만 아니라 대구의 진보정당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모두 낙선했다.

정당은 달라도 ‘왜 선거에 나섰냐’는 물음에 청년 후보들의 답은 하나로 모아졌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정당 활동을 한다. 선거기간에라도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목소리를 내고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덕분에 온통 붉은 물결 속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기본소득을 알리는 펼침막이 보이고 녹색정치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들이 선거 후에는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골목 책방을 열겠다거나 1인가구까지 보듬는 마을 공동체를 꾸리겠다고 했다. 저마다 구체적인 계획은 달랐지만,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일상 속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방향은 같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의 성적표는 초라했지만, 다시 씨를 뿌리고 척박한 밭을 일궈보겠단다. 눈 밝은 시민들이 진짜 풀뿌리 정치를 해보겠다며 작정하고 애쓰는 청년들을 알아봐주리라는 믿음도 버리지 않는다.

현실 정치로 지역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일상 속 소소한 시도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청년들도 있다.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행사에서 만난 이 청년들은 “일은 각자 하면서 놀이문화 공동체를 꾸려 함께 논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자연이나 동물을 해치지 않고 과하게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힙하게 놀 수 있다”고 했다. 술집에 둘러앉아 치맥을 하거나 고기 구워 술 마시는 것이 전부였던 놀이문화를 신선한 놀이로 채워가는 중이다.

우선 엇비슷한 카페와 술집을 벗어났다.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옛 다방에 모여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눈다. 금요일 밤 술 없는 대화 모임을 연다. 술잔을 치우고 진솔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를 돌아보고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공유부엌을 빌려 같이 밥을 짓고 둘러앉아 먹는다. 비건 도시락을 싸서 근교로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없는) 소풍’을 간다. 밤하늘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구경 대신 탐조도 해보려 한다.

알음알음 찾아온 청소년, 청년들 대여섯이 어울리지만, 굳이 나이나 이름을 알려고도 않는다. 모임을 키워 번듯한 단체를 만들거나 큰 행사를 준비할 계획도 없다. 그저 재미있게 놀고 같이 놀았던 기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퍼뜨린다. 누구든 서로 마음 맞는 이들끼리 건강하게 놀 수 있도록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그렇게 재미나게 어울려 노는 것이 자연스럽게 건강한 공동체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청년들과 지역에서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놀이문화를 만들어가는 청년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길을 가는 듯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이 같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앞서가지 않고 같이 가보자고 옆 사람과 기꺼이 어깨동무한다.

거리에는 판에 박은 듯한 붉은 펼침막이 앞다퉈 당선 인사치레를 한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는 비난 섞인 평가가 따갑다. 눈앞의 선거 결과보다 이 청년들이 살아내고 가꿔갈 공동체로 눈을 돌려본다. 숨을 가다듬고 멀리 보니 한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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