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지방의 한 대학 학생들이 강의실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지방의 대학이 젊어지고 있다. 지방소멸, 러스트벨트, 청년인구 유출 등 지방과 관련해서는 온갖 암울한 소식만이 전해지고 있는 지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지만 사실이다. 지금, 지방의 몇몇 대학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젊어지고 있다.
내가 속한 학과가 그렇다. 최근 이웃 학교와의 통합으로 사정이 바뀌긴 했지만, 오는 8월에 두 명의 선임 교수가 은퇴하고 나면 통합 전 기준으로 나는 부임 5년 만에 학과의 최고참이 된다. 지난 1년 새 학과에 두 명의 신임 교수가 부임했고, 이번 학기에도 두 명을 더 뽑을 참이니,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 우리 학과는 (통합 전 기준) 6명의 교수 모두가 새로운 인물로 대체되는 셈이다. 이는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 다른 학과들, 특히 인문사회계열의 학과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원인은 1980년대 졸업정원제 시행과 이후의 대학 증설이다. 덕분에 특정 연령대(70년대 중후반 학번)의 교수들이 지방 곳곳의 대학에 대거 자리를 잡았다. 2018년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는 2017년 기준 전국 대학에서 55살 이상 전임교원이 35.5%에 달했다는 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보통 이러한 수치는 대학이 늙어가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되는데, 실제로 같은 비율이 2007년에 17.9%였으니 그런 걱정이 근거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고령의 교수들이 은퇴한 자리를 젊은 교수들이 채우는 것을 보고 있다.
이와 같은 급격한 세대교체는 서울·수도권보다는 지방의 대학에서, 같은 지방이라도 사립대보다는 국공립대에서 더 두드러진다. 대교연의 위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5살 이상 전임교원 비율은 서울에서 33.3%, 광역시를 제외한 비수도권에서 36.8%였고, 광역시 외 비수도권 중에선 사립대가 33.5%였던 반면 국공립대는 45.2%에 달했다. 지방대의 세대교체가 더 두드러지는 이유다.
젊은 교수들의 유입은 향후 지역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에도 그랬다. 지금 대거 은퇴 중인 베이비붐 세대의 교수들이 그간 지역에서 한 일을 보라. 젊은 나이에 연고 없는 지방에 ‘내려와서’,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지역혁신을 위해 온몸을 바친 게 그들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지방자치제와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입안과 시행, 그리고 지역의 시민사회와 여론 형성에서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고, 경남 같은 지역에서는 진보 성향의 대통령과 도지사를 배출하는 데도 산파 구실을 했다.
문제는 이들의 고령화와 은퇴에 따라 유입되고 있는 젊은 교수들에게 지역 내에서 적절한 역할이 부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만 봐도 그렇다. 지역 정책이 실종 내지 재탕되는 데서,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지역 내 정치토론이 실종된 데서 그 폐해는 드러난다. 앞세대 교수들이 건재할 땐 달랐다. 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지역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좋은 정책들을 만들고 그에 대해 서로 토론했지만, 그런 역할이 젊은 교수들에게 전수되지 않고 있다. 그뿐 아니다. 지역의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10년 전에 나왔던 교수들이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지역 내 시민단체에서도 젊은 교수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결국 향후 지역의 발전은 지금 조용하게 지역을 채우고 있는 젊은 교수들의 역할에도 크게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학교 바깥의 지역사회뿐 아니라 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들은 고령인 선배 교수들보다 대체로 더 열정적으로 지방 청년의 취업난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자 할 것인데, 그들이 그런 역할을 지역에 이로운 방식으로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지역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그들의 자발성에만 맡기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므로 정부의 각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세대교체가 지방의 모든 대학에서 똑같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세대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건 일부 국공립대에 국한되고 대부분의 사립대는 빈사 직전에 있다. 하지만 지역혁신에서 대학의 역할, 특히 새롭게 유입되는 젊은 교수들의 역할을 인정한다면 이런 현실 또한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지난 정부의 지역혁신 플랫폼 사업은 이런 견지에서 재편·강화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