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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차별에 대한 차별적 시선

등록 2022-06-02 18:04수정 2022-06-03 02:36

전광영, <집합13-MA008>, 2013, 한지에 혼합 재료, 250×200㎝. 피케이엠(PKM)갤러리 제공
전광영, <집합13-MA008>, 2013, 한지에 혼합 재료, 250×200㎝. 피케이엠(PKM)갤러리 제공

[크리틱]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소수자의 권리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무르익으면서, ‘차별’이라는 단어에 아예 부정적인 표지가 붙어버린 듯하다. 특히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을 둘러싸고 찬반 논의가 뜨거웠던지라, ‘차별’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조심스럽다. 간혹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political correctness)의 위반 여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술처럼 독창성이 주목받는 분야에서는 차별이 나쁜 뜻이 아니다. 뛰어난 미술가는 남들과는 차별적인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에, 탁월하다는 뜻과 차별적이라는 말이 동일선에서 이해되는 까닭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자에게도 미적 안목이 필요한데, 여기에도 차별적 시선이 숨어 있다. 안목 또는 ‘분별력’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discernment’는 다름을 가려낼 수 있는 식견 능력을 말한다. ‘분별하다’(discern)와 유사한 단어를 검색하면 ‘차별하다’(discriminate)가 제일 먼저 뜬다. 수작(秀作)인지 아닌지 차별할 줄 아는 게 바로 안목인 셈이다.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원로미술가 전광영(78)은 젊은 시절 미국 유학 때부터 시작했던 그 생각을 평생토록 멈추지 않고 산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지 않으면 보여줄 것도 내세울 것도 없으며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다소 조바심에 가까운 야심에, 그의 정신과 몸은 한순간도 쉴 수가 없다. 2022년 베네치아비엔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4월부터 11월까지 대규모 개인전을 열 만큼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전광영의 작품은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그림이라기보다는 입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린다. 처음부터 이렇게 남다른 방식으로 작업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나온 뒤, 미국으로 유학 간 그는 가난 속에서 고생스레 12년 동안 화가로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자기만의 특성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귀국 뒤 새로운 영감을 찾기 위해 전국을 유랑하던 1995년의 늦봄 어느 날이었다. 감기 몸살에 걸려 약을 먹으려던 전광영은 약봉지를 물끄러미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 큰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약방을 떠올리게 된다. 한지를 삼각으로 접어 감싸고 한지를 꼬아 만든 끈으로 동여맨 약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모습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추억 속 이미지와 감성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삼각형 모양으로 자른 스티로폼 조각을 고서(古書)의 한지로 쌌다. 그리고 작품의 크기에 따라 적게는 천여개, 많게는 만여개 조각들을 붙여 집합적인 입체를 만들었다.

한지는 전통의 천연재료인데, 그것으로 싼 스티로폼은 산업사회의 합성재료다. 겉과 속이 이질적인 두 재료가 상충하며 메시지를 던진다. 세계는 급속한 산업화 덕택으로 지금처럼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도 덩달아 따라오지 않았던가. 한약사가 정성으로 약재를 포장하듯, 산업화가 초래한 폐해와 상처를 보듬는 손짓이 전광영의 작품에 깃들어 있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것을 찾겠다는 의지에서 시작했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작품은 인류의 염원을 함축할 수 있게 됐다.

다수든 소수든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거나 자기 이익만을 따지면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런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일 때 차별은 문제가 된다. 남들을 자기와 다르게 보는 시선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스스로 다르게 보이려는 열망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추구해야 할 긍정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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