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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K-꼰대와 좀비

등록 2022-05-15 15:39수정 2022-05-16 02:38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서울 말고] 정나리 | 대구대 조교수

봄과 함께 학생들이 캠퍼스로 돌아왔다. 불안감이 없진 않았으나 전면적으로 대면수업을 재개하면서 학교에 생기가 돈다. 특히 흩날리는 꽃잎을 맞으며 전동휠체어를 타고 강의실로 향하는 학생, 보조지팡이와 점자블록에 의지해 동선을 익히는 학생, 그리고 속기사의 도움을 받아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의 모습에 조금 안도한다.

한국 사회가 변화해온 과정에 지식인과 학생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심약하고 무능한 룸펜에서부터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투사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은 그동안 ‘노동자들이 위엄과 용기로 걸어온 길’(커밍스, 1997)과 함께, 지금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하나 그들의 주요 활동공간인 학교가 아직 해묵은 ‘꼰대/좀비’ 구도를 못 벗어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20세기 권위주의적 교육체제에서 꼰대는 학생들의 신체를 통제하고 입을 막아 좀비화시키곤 했다. 물론 늘 성공하진 않았지만, 이 시기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다들 학교에서 영혼을 한움큼 빼앗긴 경험은 공유할 것이다. 그에 비해 21세기 캠퍼스에서 전통적인 꼰대력은 눈에 띄게 쇠락하였고 좀비의 종류는 다양해진 듯하다. 아쉽게도 양상만 다를 뿐, 영혼이 저당 잡히는 건 비슷하다. 단적으로, 점수에 전력질주하는 좀비와 지위 재생산이 특기인 관료주의적 꼰대가 피라미드 정점에 있다. 진화인지 퇴화인지, 세기를 넘어와서도 꼰대와 좀비는 그렇게 짝을 이룬다.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인간들은 좀비를 피해 여러 다른 성격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존을 도모하는데, 특이하게도 좀비들 틈에서 좀비 행세를 하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좀비 가면을 쓰고 좀비들과 걸으며 스스로를 보호한다. 일종의 위장술로, 힘들게 싸우다 죽느니 차라리 ‘죽은 것처럼 사는’ 방법이다. 오감 생생한 세포들의 전원을 끄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살벌한 생태계에서, 그리고 내면으로 침잠한 꼰대적 마음의 전방위적 닦달에 학생들은 때로 좀비 가면을 택할 수밖에 없다.

영미권의 좀비가 근대 자본주의적 부의 축적에 결정적이었던 식민지 노예와 산업노동자, 또는 이민자로서의 ‘타자’와 그에 대한 불안의 은유이기도 했다면, 지금 우리 맥락에선 신자유주의적 일상의 ‘사실적’ 재현에 가까울 정도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좀비들 공격으로 교실에 갇힌 학생들이 각종 인정투쟁과 권력관계에 휩쓸려 서로를 물어뜯으려는 찰나 한 교사가 그가 체득한 진실 한조각을 일러주고, 보여준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면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게 돼.” 남은 아이들은 서로를 지켜주며 함께 간다. 그래도 냉정한 한국 현실처럼 하나씩 낙오되거나 희생되고, 그들은 그대로 좀비가 되어 돌아와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협한다.

교육 현장의 오랜 난제 중 하나는 관념적 지식을 실천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영문법이 발화로, 환경에 대한 지식이 환경을 위한 행동으로,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전환되기를 바라지만 그 과정은 여전히 블랙박스이다. 강의실에서 인권투쟁의 핵심 장면들을 논의하나, 학생이 훗날 트럼프가 될지 툰베리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줄 세워 점수를 매기면서) 끝까지 함께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이중) 메시지를 학생들이 훌륭하게 구현해내는 놀라운 순간들이 있다. 나도 미처 체화하지 못한 가치에 그들의 진심이 담기면 뜨끔하다.

살아남음의 끔찍한 고단함 속에서 지식인과 학생들이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지 오래라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한 기억은 선명하다. 생명력 넘치진 않는대도, 맥은 뛴다. ‘케이(K)꼰대와 좀비’의 문화를 접고, 현 상황을 바꿀 생각이라곤 없는 안팎의 힘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그 뜨끔한 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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