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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낯설게 바라보기, 우주에서 일상에서

등록 2022-05-12 18:38수정 2022-05-12 18:46

수천개의 외계 행성계를, 외부 은하를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그들이 어떤 원리로 존재하는지 살펴본다. 낯익게 보기를 통해서 우리 은하, 우리 태양계의 분포와 구성과 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인류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민족, 다른 문화권을 관찰하며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려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심채경 | 천문학자

중학교 과학시간에 중력에 관해 배운다. 초등학교 때 무게를 배우고, 중학생이 되면 중력의 개념을 다루게 된다. 중력의 방향은 지구 중심 방향이고, 물체가 자유낙하하는 빠르기나 우리의 몸무게는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 등이다. 중력이 지구보다 약한 달에서는 질량은 같지만 몸무게가 줄어든다는 일러스트가 교과서에 실리곤 한다. ‘몸무게도 킬로그램(㎏) 단위를 쓰는데 왜 몸질량이 아니라 몸무게라고 할까?’ 하는 의문도 품어보게 된다. 답은 우리가 사용하는 몸무게의 단위는 원래 킬로그램힘(㎏f)인데 통상 킬로그램으로 줄여서 부른다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킬로그램이라는 단위를, 당연했던 우리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높이 차올린 축구공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고 고드름이 아래로 길어지는 것을, 북반구에 사는 사람의 ‘위쪽’은 남반구에 있는 사람에게는 위쪽이 아니라는 것을, 낯설게 바라본다.

톨스토이 평전을 쓰기도 했던 러시아의 문학이론가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글 쓰는 기법의 하나로 “낯설게 보기”를 꼽았다. 아주 익숙한 일상의 사물, 사건, 인물, 장소를 낯선 눈으로, 비범한 각도로 조명하는 것이다. 오래 사용돼온 일상의 단어를 새롭게 살펴보며 어떤 대상을 배경 속에서 끄집어내어 생경하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1968년, 아폴로8호의 우주인들은 달의 지평선 너머로 지구가 떠오르는 듯한 ‘지구돋이’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 속 검은 하늘에 파랗게 뜬 지구에는 바다도 있고, 구름도 있고, 땅도 있다. 그 땅 위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우리도 있을 것이다. 보이저 탐사선의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을 통해서도 지구를 낯설게 볼 수 있다. 태양계 끝자락을 향해 가던 보이저 탐사선이 아주 멀리서 잠시 뒤돌아보았을 때, 지구는 단 한 픽셀의 희미한 점이었다. 우리에게 그토록 익숙한 곳. 우주에서 보는 지구는 무척 생경하다.

천문학은 지구를, 우리를 낯설게 보는 훈련임과 동시에 낯선 공간에서 우리를 다시 낯익게 보는 훈련이기도 하다. 우주는 한편으로 낯설고, 한편으로 낯익다.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너머에서 지구를 똑 닮은 행성을 찾고 있다. 태양 주위에 행성들이 있듯이 밤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에도 그 둘레를 도는 행성들이 있다. 우리 목성보다 큰 목성이나 우리 토성보다 더 화려한 고리를 가진 토성이 존재할 수도 있고, 우리 지구만큼이나 찬란한 푸른 행성도 있을 것이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다.

은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 은하의 전체 모습을 사진 한장에 담을 수 없다. 차 안에 앉아서 내가 탄 차의 외관을 조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은하 너머에 있는 수많은 외부 은하의 관찰을 통해 우리 은하도 더 잘 알게 된다. 낯선 우주 공간에서 낯익은 모습을 찾아보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 태양계가 우주 어디에나 널리고 널린 행성계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현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수천개의 외계 행성계를, 외부 은하를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그들이 어떤 원리로 존재하는지 살펴본다. 낯익게 보기를 통해서 우리 은하, 우리 태양계의 분포와 구성과 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인류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민족, 다른 문화권을 관찰하며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려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가끔 출근길에서 만나는 모든 표지판이 내가 전혀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쓰여 있다고 상상해본다. 낯선 나라에 막 도착하면 특별할 것도 없는 도로 주변으로 아무렇게나 자란 들풀도 눈에 들어오곤 했다. 여기가 아주 낯선 곳이라고 상상해보면, 매일 다니던 길도 새롭게 보인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너무도 익숙했던 일상이 크게 바뀌는 걸 여러번 목도했다.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고 괴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찐자’, ‘마기꾼’ 같은 신조어를 만들며 웃어보기도 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일상의 풍경을, 우리 사회를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하들의 카탈로그를 만들며 우리 은하를 더욱 새로이 발견하는 천문학자들처럼 매일의 일상을 낯설게 볼 때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또 하루를 지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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