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당신에게 1조원을 투자해준다면, 어떤 메타버스를 만들고 싶나요?”
메타버스 관련 수업을 진행할 때 토론 주제로 자주 내놓는 질문이다. 복권에 당첨돼 수십억원, 수백억원이 생기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이들은 있어도, 1조원을 투자받는다고 가정해보는 이들은 드물다. 그래서 금액을 1조원으로 잡았다. 학생들은 순간 형형색색의 장난감 블록이 천장까지 닿아 있는 거대한 놀이방에 앉은 아이처럼 변한다. 본인이 상상하는 것,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만들어 볼 수 있으리란 생각에 잠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질문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필자가 마주친 학생들은 통상 두 유형의 답변을 내놓았다. 본인이 현재 하는 일에서 답답한 부분을 바꾸려는 계획,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계획이었다. 일례로, 교사를 업으로 하는 이들은 주로 교육 현장을 혁신하는 계획을 내놓는다. 어떤 학생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서로 어울려서 온정을 나누고, 힘을 얻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에게 잠시 시간을 주고 계획을 조금 구체화하도록 한다. 아주 상세하지는 않더라도, 굵직하게 어떤 항목에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들이 짜놓은 예산의 합은 통상 수십억원 정도다. 1조원을 주겠다는 내 계획이 무색하다. 물리적 현실의 넓은 땅, 높은 건물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렇다.
그다음에는 학생들에게 예산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고, 저렴하게 추진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한번에 다 완성하지 않고, 서너단계로 나눠볼 때 첫 단계에서 필요한 부분까지만 예산을 잡게 한다. 그러면 보통 예산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이내로 줄어든다. 물론, 여전히 적은 돈은 아니다.
이 토론을 통해 나는 학생들에게 세가지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 첫째, 자신이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생계를 위해 그저 지금의 일을 할 뿐이라는 생각,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가끔은 블록 놀이방의 아이처럼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싶다.
둘째, 큰 자원이 없어서 우리가 그것에 도전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자원이 부족해서 도전하지 못하기보다는, 소요되는 자원을 따져보지도 않은 채 꿈을 접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언급한 자원은 꼭 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셋째, 물리적 현실이 아닌 디지털 현실, 메타버스를 활용한다면 예상보다 더 적은 자원으로 무언가를 시작해볼 수 있다. 메타버스에 미술관을 만들고 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가, 심리상담소를 개원한 상담사, 방송국을 만든 프로듀서 등이 이미 나온 상황이다.
앞서 예시한 교육현장 혁신과 소외된 이들을 위한 터전을 합쳐서 상상해보자.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물리적 공간 위에 만든다면, 최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은 필요하다. 이런 학교를 메타버스에 마련하려면, 비용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정도로 줄어든다. 여전히 적지 않은 부담이다.
단계를 나눠서, 처음에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학교가 아닌 작은 공부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수십명 이하의 동시 접속자에게 무료로 개방되는 메타버스 플랫폼에 정원, 상담실, 강의실이 있는 아담한 공부방을 만들자. 뜻이 통하는 지인 한두명을 더 찾아서, 함께 공부방 운영을 시작해본다. 당장 생업을 접고 매진하기는 어려우니,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서너시간만 운영하며 시작해도 좋다. 몇줄 글로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적었으나,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에 가정했던 물리적 공간의 거대한 학교보다는 훨씬 가깝게 여겨지지 않는가?
눈앞에 안 보이는 세계, 디지털 기술로 이뤄진 세계이기에 우리에게 메타버스는 멀게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보면 그곳은 오히려 더 가까운 세상일 수 있다. 그 세상에서 블록 놀이방의 아이처럼 꿈을 펼쳐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