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다시 옴스테드의 공원론을 떠올리며

등록 2022-05-12 15:40수정 2022-05-12 18:57

뉴욕 센트럴파크,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와 캘버트 복스 설계. 센트럴파크 관리단 제공
뉴욕 센트럴파크,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와 캘버트 복스 설계. 센트럴파크 관리단 제공

[크리틱] 배정한 |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지난 4월26일은 도시공원의 전범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설계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1822~1903)의 200번째 생일이었다. 센트럴파크뿐 아니라 미국 전역 여러 도시에 대형 공원과 공원녹지 시스템을 구현한 옴스테드. 그는 도시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조경가(landscape architect) 직능을 세운 선구자였을 뿐 아니라 도시사상가이자 사회개혁가였다. 옴스테드 탄생 200년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강연회가 줄을 이었고, 그의 도시철학과 공원관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시대 도시가 처한 기후위기와 팬데믹, 공간적 불평등에 처방전을 구하는 학술대회도 연이어 열렸다.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을 갈무리한 다양한 아카이브도 구축돼 이제 클릭 몇번이면 그가 남긴 글과 도면을 누구나 직접 만날 수 있다.

도시공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고대와 중세의 도시에도 광장, 시장, 묘지처럼 공원과 엇비슷한 기능을 한 여러 유형의 장소가 있었지만, 넓은 면적의 열린 공유지가 대중의 여가를 위해 공원 형태로 들어선 건 19세기에 접어들어서다. 공원은 근대 도시의 발명품이다. 센트럴파크를 필두로 도시공원들이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낳은 인구 폭증과 과밀, 과도한 빈부 격차와 부족한 노동자의 여가 공간, 위생 악화와 전염병 유행을 치유하는 공간적 해독제로 투입되었다. 옴스테드의 공원 사상과 그 실천은 도시를 수술하고 재편하는 이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상업, 무역, 과학적 영농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며 청년기를 보낸 옴스테드는 1850년의 영국 여행을 통해 공원의 필요성에 눈뜬다. 최초의 시민공원으로 알려진 공업도시 리버풀 인근의 버컨헤드 공원을 방문한 뒤 공원은 ‘민중의 정원’이자 민주주의의 실천장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뉴욕 데일리 타임스>의 저널리스트로 미국 남부를 취재하면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다수의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네권의 책을 출간하며 작가로 성장하던 그는 1857년 센트럴파크 사업의 감독관을 맡았고 이듬해 열린 센트럴파크 설계공모전에 건축가 캘버트 복스와 함께 출품해 당선된다. 그린스워드(Greensward)라는 제목을 단 그들의 출품작은 광활한 녹지와 풍부한 식재, 목가적 경관을 갖춘 동시에 보행과 차량 동선을 입체적으로 분리한 혁신적인 설계안이었다. 1873년 완공된 센트럴파크는 지구촌 곳곳의 대형 도시공원 모델로 급속히 전파되고 복제된다.

버팔로 공원 시스템 계획,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미국의회도서관 자료 갈무리
버팔로 공원 시스템 계획,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미국의회도서관 자료 갈무리

옴스테드는 대형 공원 그 이상의 유산을 도시계획에 남겼다. 공원과 공원을 잇는 선형 파크웨이 개념을 창안해 공원과 도시교통 인프라를 통합하고자 했다. 버팔로 공원 시스템 계획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스턴에는 일명 ‘에메랄드 목걸이’라고 불리는 환상형 녹지 시스템을 구현했다. 공원, 파크웨이, 호수, 초원, 산림을 도시조직과 연결한 이 계획은 최근 도시계획이 강조하는 그린네트워크 혹은 그린인프라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불안하고 답답한 감염병 시대를 통과하며 우리는 공원의 효능과 가치를 새삼 재발견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신선한 공기와 바삭한 바람, 따사로운 햇살에 위로받으러 우리를 환대하는 공원으로 탈출한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뒤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옴스테드의 공원론을 21세기에 다시 소환할 줄 누가 알았을까. 공원을 통해 열악한 도시 위생을 개선하고 시민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옴스테드의 비전은, 공원이 “도심에서 자연으로 최단시간 내 탈출”을 가능하게 한다는 그의 신념은 코로나 시절의 불안과 고립 끝자락에 선 지금 여기의 도시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