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3일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51번째 과제로 노사협력을 제시했다. 또 이를 위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성·독립성 강화를 통해 참여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의 복지증진과 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노사 협의기구이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법’에 따라 근로자 30명 이상 사업장은 노사 대표로 구성된 협의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노조 조직률이 10%대에 그치고, 그나마 유노조 사업장이 대기업에 편중된 한국 현실에서 협의회는 무노조 중소기업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무노조 사업장의 절반 정도에서 협의회가 운영 중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노조가 인수위 발표 하루 전에 회사를 근로자참여법 위반 혐의로 서울노동청에 고발했다. 선거인단에 의한 근로자위원 선출방식이 위법이라는 이유다. 근로자참여법 시행령은 근로자위원을 근로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로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는 노사협의회가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것도 부당노동행위 소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무노조경영을 고수하며 매년 노사협의회에서 임금협상을 했다. 올해도 지난 4월말 협의회에서 평균 임금인상률 9%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근로자참여법 20조는 협의회에서 논의할 사항을 일일히 열거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과 성과 배분, 채용·배치 및 교육훈련, 고충처리, 안전·보건 등 작업환경 개선과 건강 증진, 임금 지불방법·체계·구조 개선 등이다. 주목할 부분은 임금인상 관련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임금협상은 노조의 고유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당수 무노조 사업장이 삼성전자처럼 노사협의회에서 임금을 결정했다. 법위반 소지가 크지만 노조가 없다는 이유로 묵인됐다. 삼성은 2020년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노조경영을 공식 포기했다. 또 삼성전자 등 여러 계열사에 새 노조가 만들어졌다. 노사협의회가 계속 임금을 결정할 이유도, 명분도 없어졌다.
삼성전자는 협의회와의 임금 합의를 이유로 노조의 15% 인상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협의회는 전 직원을 대표하지만, 노조원은 직원의 4%에 불과해 대표성이 없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것이 협의회의 법 위반 혐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또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배치될 수 있다. 노사협의회를 노조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해온 삼성의 오랜 관행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을 수 있다.
보수언론은 근로자참여법이 근로자협의회의 협의 대상에서 임금 결정을 명확히 제외한 것은 아니라는 억지성 주장도 편다. 금속노조의 서범진 변호사는 “법 5조는 ‘노조의 단체교섭은 이 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고, 사용자가 노사협의회를 핑계로 노조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노동위원회의 판정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노사협의회가 노사협력은커녕 갈등을 심화시키는 심각한 상황이다. 인수위는 50번째 국정과제로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을 제시하면서, 노사를 가리지 않고 불법행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자가 친기업·반노동으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삼성의 노사협의회 위법 논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새 정부의 노사정책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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