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학교에서 별칭은 ‘철수세미’, 또는 ‘촤알쓰’. 경남 함양에서 나고 자란 이철수. 1985년 대학에 입학했고, 곧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졸업 직후 선반을 배워 자동차 부품 생산공장에 입사한다. 그로부터 17년. 대구 경북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며 갖가지 직책을 맡았다.
당시 노동운동 현장, 짐작이 간다. 동지들에게서 무한한 힘을 얻었겠지만, 예기치 않은 배신도 당했을 테고. 우여곡절이 많았겠지. 새로운 세상 꿈꾸며 현실의 강퍅함을 견뎠을 것이다.
2009년. 경북 고령으로 귀농한다. 벼농사, 밭농사, 딸기잼 가공 등을 시작했으나 현실은 우리의 철수세미 선생을 평범한 농부로 놓아두지 않는다. 고령군농민회에 가입했고, 이 단체의 사무국장을 맡은 뒤 6년이 더 흘렀다.
그동안 일 무더기와 사람 숲 사이에서 상처받았고, 우울해졌고, 소진됐다. 세상의 정의를 위한 싸움이 중요했으나 차츰 자신의 행복도 찾고 싶었다. 삶의 전환이 필요했다. 2014년, 간디대학원 교사 양성 과정의 문을 두드린 배경이다. 산청간디어린이학교에서 인턴 과정을 마친 이듬해, 이철수는 제천간디학교의 교사가 된다.
철수세미는 단아하고 다부진 체형을 갖고 있으며, 약간 긴 상고머리에 뿔테 안경을 썼다. 동안에 맑은 눈빛을 가졌다. 의령을 ‘어령’이라고 발음해서 동료 교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한다. 서부 경남 지역 악센트가 살아 있는 그의 발성과 발음은 낭랑하고 또렷하고 정겹기만 하다. 아이들에게 상냥하고 성실하다. 포크 기타를 잡고 ‘바로 그 한 사람이’를 부를 때는, 영락없는 청년 시절로 되돌아간다.
이철수는 노동인권, 농사, 생활기술작업장을 맡고 있다. 중1~고1 사이 통합반 9명을 책임지는 담임교사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교내 동아리 ‘통통통’ 지도교사까지 맡았다. 학년 초에 아이들이 붙인 반 이름은 기노철. ‘기타 치고 노래하는 철수샘 반’의 줄임말이다.
2019년부터 2년 동안 학교 시설설비 돌보는 역할을 부탁하자 기꺼이 맡았다. 40년 넘은 옛 ‘국민학교’ 건물을 교사로 사용하고 있기에 배수, 전기, 난방 등 시설관리에 잔손이 많이 간다. 바쁜 와중에 생활기술작업장 아이들과 한 학기 동안 협력 작업을 통해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신문판매대 정도 크기의 생태화장실 한 칸을 완성했다.
이철수는 몇해 전 제천시 덕산면 월롱마을에 있는 1900㎡ 규모 밭을 사들여 율무 농사를 시작했다. 농업인 등록을 한 농부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율무 팔아 남긴 적은 수익으로 떡을 주문해서 교무실에 돌렸다.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짓는 농사라 절대 쉽지 않다.
그가 고3 담임을 맡았던 때가 기억난다. 유난히 선생 말 잘 안 듣던 아이들 서너명이 그 학년에 뭉쳐 있던 해였다. 생활교육이 버거웠다. 기숙사에 늘어져 있던 아이들은 아침 열기에 안 나타나기 일쑤였다. 철수세미는 생활관으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설득하고, 달래서 데리고 내려온다. 이루어질지 모를 약속과 다짐을 아이들과 다시 하고 또 기다려준다. 일주일간 교외에서 했던 프로젝트 수업 중에는 아이들이 사고를 내서 해당 지역 경찰서를 오가야 했다. 그런데도 “조금 힘들었다”는 정도로 말할 뿐, 아이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대안적 세상’이나 ‘미래사회’를 자주 거론한다.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 그렇게 하려 할 때 명심할 게 있다. 경청과 인내가 그것이다. 자신의 신념이나 살아온 결대로만 가르치지 않겠다는 여유로움 말이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소통하기를 바란다면 교사에게 이 자세가 꼭 필요하다.
장자크 루소는 자기 학생이 ‘농민처럼 일하며, 철학자처럼 사색하길’ 바랐다. 그런 사람을 만들려면 교사는 자기 존재를 걸어야 한다. 꼭뒤를 모두 보여주면서 아이들과 함께 뒹굴어야 교사가 한뼘씩 성장한다. 자신의 인격과 지성, 즉 삶 전체라는 자원을 죄다 끌어써야 아이들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 철수세미 같은 선생들이 전력을 다하고 있는 학교와 교무실은 세상 최고의 사범대학이다. 생애사 연구를 해보고 싶을 만큼 다양한 삶의 경로와 사연을 간직한 우리 교사들. 이철수는 그 교사 공동체를 구성하는 22분의 1이다. 그에게 존경심과 매력을 동시에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