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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물에 빠진 탈레스, 생각에 잠긴 소크라테스

등록 2022-05-03 18:03수정 2022-05-04 02:36

[고명섭의 카이로스]
대선 기간에 공공연히 인문학을 부정하던 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돼 취임을 앞두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쓸모없는 인문학’을 치워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기류가 더 거세질 게 뻔하다. 그러나 인문학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돈 되는 것에만 눈을 돌리는 세계에 인간다운 삶, 인간다운 공동체가 들어설 수 없음은 분명하다.

생각에 잠긴 소크라테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생각에 잠긴 소크라테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은 죽기 2년 전 마지막 공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고개를 숙여 발을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별을 보세요. 보이는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무엇이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가 상상해보세요. 호기심을 품으세요.” 빅뱅과 블랙홀에 관해 가장 멀리까지 탐구한 이론물리학의 거인이 마지막 강연에서 권한 것은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는 것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사람 가운데 고개를 들어 별을 본 첫번째 사람, 그러니까 호킹의 가장 먼 선배가 되는 이는 옛 그리스 밀레토스 사람 탈레스(기원전 624~545)일 것이다. 탈레스는 어느 날 별을 쳐다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트라키아 출신 늙은 하녀가 그 꼴을 보고 놀렸다. ‘하늘에 있는 것들을 열심히 보더니 정작 자기 발 앞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군.’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 ‘일곱 현인’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꼽히는데, 플라톤이 <테아이테토스>에서 전하는 이 이야기 속 탈레스는 지혜롭기는커녕 어리숙해 보인다. 철학 하는 사람 곧 ‘앎과 지혜에 몰두하는 사람’은 먼 곳에 정신이 팔려 눈앞의 것을 보지 못하기에 쉬 웃음거리가 된다. 플라톤은 말한다. “그런 사람은 경험이 없는 탓에 우물에 빠지고 온갖 난관에 맞닥뜨려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다가 바보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탈레스 이야기는 당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의 ‘실천적 지혜’에 관심이 많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우물에 빠진 뒤 얘기를 <정치학> 제1권에서 들려준다. 사람들이 탈레스를 두고 쓸데없는 일에 골몰하느라 가난하게 산다고 비아냥댔다. 탈레스는 천체와 기상을 관찰해 얻은 지식으로 다음해에 풍년이 들 것으로 예견하고 올리브기름 짜는 기구를 싼값에 모조리 거두어들였다. 이듬해 실제로 올리브 풍년이 들자 그 기구들을 비싼 값에 대여해 큰 이득을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큰돈을 버는 것이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아니지만 철학자들도 원하기만 하면 쉽게 부유해질 수 있다는 것을 탈레스는 입증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서 탈레스가 이집트에 가서 피라미드 높이를 쟀다고 전한다. 탈레스는 사람의 키와 그림자 길이가 같아지는 순간에 피라미드의 그림자 길이를 잼으로써 피라미드 높이를 정확히 계산했다. 탈레스는 또 일식도 예측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탈레스가 예측한 일식이 소아시아의 리디아와 메디아 사이 전쟁이 6년째 접어들던 해에 일어났고, 태양이 사라지자 양쪽이 전쟁을 멈췄다고 기록했다. 후대 학자들은 그 일식이 기원전 585년에 일어난 것으로 계산해냈다. 탈레스는 이런 말도 남겼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주다. 신이 만든 것이므로. 가장 큰 것은 공간이다. 모든 것을 포용하므로. 가장 빠른 것은 지성이다. 모든 것을 꿰뚫고 달리므로. 가장 센 것은 필연이다. 모든 것을 지배하므로.” 탈레스는 자신의 지성으로 우주와 공간을 꿰뚫고 달려본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탈레스가 고개 들어 별만 본 것은 아니었다. 탈레스는 고개 숙여 땅을 본 사람, 더 정확히 말하면 지정학(geopolitics)을 탐구한 사람이기도 했다. 탈레스가 활동하던 때는 키루스 2세가 페르시아를 막 제국으로 키워가던 때였다. 오늘날로 치면 패권 교체기였다. 이때 소아시아 대국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를 정벌할 계획을 세우고 탈레스가 살던 밀레토스에 군사동맹을 요구했다. 탈레스는 크로이소스의 요구를 들어줘서는 안 되며 두 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레토스인들은 탈레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크로이소스는 키루스와 맞붙어 대패했고 소아시아 일대는 페르시아 수중에 들어갔다. 크로이소스는 포로가 되고 리디아는 멸망했지만, 중립을 지킨 밀레토스는 살아남았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전기는 탈레스가 ‘지배받지 않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알려준다. 탈레스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못마땅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늙은 독재자”라고 답했다.

고대철학을 크게 ‘자연학’과 ‘윤리학’으로 나눌 수 있다면, 탈레스는 자연학을 창도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와 자연에 관한 탈레스의 모든 관심은 결국 인간으로, 윤리학으로 향했다. 탈레스는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라는 질문을 받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답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윤리학적 명령의 최초 발설자였다. 그렇다면 탈레스 안에 이미 ‘미래의 소크라테스’가 들어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탈레스가 하늘을 보다가 우물에 빠졌던 것처럼,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생각에 빠진 사람이었다. 한번 생각에 잠기면 자기 앞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였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생각에 잠긴 소크라테스’를 두차례 이야기한다. 만찬이 열리는 아가톤의 집으로 가던 길에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생각에 잠겨들더니 이웃집 현관 앞에 그대로 멈춰 선다. 불러도 들으려 하지 않으니 친구들은 소크라테스를 두고 아가톤의 집으로 간다. 만찬장에서 누군가가 소크라테스를 데리러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아리스토데모스가 말한다. “그분이 혼자 있도록 내버려두게. 그분은 가끔 아무 데고 멈춰 서 있는 버릇이 있다네. 방해하지 말고 혼자 있도록 놔두게!” 만찬이 시작되고 한참 지난 뒤에야 소크라테스는 만찬장에 들어선다. 소크라테스는 한번 생각에 빠지면 끝을 보는 사람이었다.

생각에 잠긴 소크라테스에 관한 더 극적인 증언은 <향연> 후반부에 나온다. 잔치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를 때 등장한 알키비아데스가 전해주는 이야기다. 알키비아데스는 그 10여년 전 소크라테스와 함께 포테이다이아 원정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이분(소크라테스)이 이른 아침에 한곳에 서서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셨는데, 생각에 진척이 없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서 탐색하시더군. 한낮이 되자 다들 이분을 알아보고 감탄하며 소크라테스가 이른 아침부터 무언가 생각에 잠겨 그곳에 서 있다고 수군거렸다네.” 소크라테스는 세상과 자기를 잃어버린 듯 저녁이 지나고 밤이 새도록 생각에 잠겨 빠져나오지 않는다. “이분은 날이 새고 해가 뜰 때까지 그곳에 서 계시다가 해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나서 자리를 뜨셨네.”

전쟁터에서 소크라테스는 만 하루 동안 꼼짝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동료 병사들은 소크라테스의 그런 끈질김에 감탄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에 잠긴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소크라테스’라고 말한다. 자신과 대화하면서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지점에 이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이전의 생각과 새로 떠오른 생각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다가가려고 한다. 그러나 일치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하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사를 잊고 생각에 잠겨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중에 ‘자기 자신에 대한 앎’에 이르고, 그 앎과 함께 ‘윤리학’이 탄생한다.

이때의 윤리학은 무엇이 정의로운지, 무엇이 참된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같은 근원적인 물음을 포괄한다. 탈레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소크라테스는 하늘로 향하던 눈을 땅으로 돌렸다. 이 두 방향의 사유를 통괄하여 인간과 인간의 삶에 관해 묻는 물음의 집적태가 ‘인문학’일 것이다. 여기서 칸트의 무덤에 새겨진 <실천이성비판>의 맺음말을 떠올려봄 직하다. “더 자주 더 오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커지는 경탄과 경외로 마음을 채우는 두가지가 있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 그것이다.” 별과 도덕을 하나로 이어 경외와 경탄으로 바라보는 그 마음이 바로 인문학의 마음일 것이다.

인문학은 불필요하다는 말이 틈만 나면 쏟아진다. 트라키아 하녀의 비웃음과 다를 바 없다. 대선 기간에 공공연히 인문학을 부정하던 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돼 취임을 앞두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쓸모없는 인문학’을 치워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기류가 더 거세질 게 뻔하다. 그러나 인문학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돈 되는 것에만 눈을 돌리는 세계에 인간다운 삶, 인간다운 공동체가 들어설 수 없음은 분명하다.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즐거운 지식-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187편의 지식 오디세이>,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 시기, 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하려 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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