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문재인과 윤석열 시대 너머

등록 2022-05-03 15:53수정 2022-05-04 02:39

사진은 2019년 7월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당선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2019년 7월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당선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세상읽기]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며칠 뒤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대통령 집무실 이전, 내각 후보자들의 탈법·비리, 60대 갑부 남성과 검사 출신, 대통령 절친들로 채운 인선 등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위선, 특권, 불공정을 맹비난하며 걸머쥔 권력이건만, 지금 국민들은 ‘공정과 상식’은커녕 한국 사회 진정한 거대 권력의 실체를 보고 있다.

성폭력 대책을 요구하는 여성들을 조롱하고, 이동의 자유를 원하는 장애인들을 공격하며, 어린이를 보호하는 민식이법을 완화하고, 산업재해 대책인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을 위축시킨다며 손보려는 등의 이 모든 태도에 공통된 것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폄훼와 경멸이다. 우리 중의 대다수는 각기 어떤 면에서 사회적 약자 아닌가. 이것은 국민의 다수를 배제하는 정치다.

이렇게 상류층, 권력층이 자기들만의 세계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 초기를 많이 닮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고 말하는 영어 교육’을 무려 국정목표로 세우고, 미국에서 못 파는 쇠고기 부위를 한국이 수입하는 것을 국민이 반대한다고 하니 대통령이 ‘불안하면 한우 사 먹으라’고 하던 그 순진무구한 계급성 말이다.

이런 유사성은 구조적인 것이다. 한국 보수는 탄핵 뒤 ‘진보도 똑같다’는 면죄부 발행에 몰두하느라 성찰과 혁신이 없었다. 변신도 있었다. 30대 당대표를 뽑았고, ‘청년’, ‘엠제트’(MZ), ‘2030’을 내세워 마이크도 쥐여줬다. 그런데 그 청년들은 여성혐오에 앞장섰고, 그 당대표는 지금 성상납 혐의로 징계 위기다. 결국 오래된 권력의 복귀로 오기 위한 우회로였다. 윤석열 시대는 모든 것을 탄핵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이 계속 충돌하는 시간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기고 넘어야 하는 벽은 대통령과 검찰의 권력만이 아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절망은 어쩌면, 모든 선한 가치와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었다는 데 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 정의, 평등, 공정, 연대, 이 모든 것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언어로 더 나은 미래를 말할 것인가.

탄핵동맹의 해체는 우리 사회에 무규범과 가치의 혼돈, 모든 권위의 몰락을 가져왔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던 동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은 80%를 상회했고, 문재인 집권 초기에 대통령 긍정평가율도 80%에 달했다. 이념, 계층, 지역 차이를 넘는 범국민적 지지와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고양된 희망이 현실에서 배반당한 뒤, 그 자리엔 환멸과 역겨움의 집합감정이 들어섰다. 집값 폭등, 정치인 성추행, 다운계약서는 촛불의 아우라와 공존할 수 없다.

이 과정은 의외로 꾸준히 진행돼왔다. 민주당 지지율과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긍정여론은 지난 5년간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그런 가운데 2018년과 2020년 두차례 일시적으로 여론이 호전됐는데, 남북정상회담과 코로나19 초기 대응 성공이라는 예외 상황의 결과였다. 바로 이때 지방선거와 총선이 실시됐고 여당이 압승을 거뒀다. 이 승리가 독이 됐다. 사회 밑바닥은 서서히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리고 있었음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렸으니 말이다.

윤석열 정부의 탄생은 이 모든 불행한 과정의 결말이다. 양대 정당의 핵심 지지층은 각자의 신념과 선악의 잣대로 현실을 보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의 가장 깊은 위기는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진보도 보수도, 그 진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뜨거운 열정으로 뭉칠지언정, 더 이상 많은 사람의 가슴에 닿아 공감과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윤석열의 시대를 이겨내려는 모든 노력은, 그와 함께 문재인의 시대를 넘어서야만 한다.

노동자 시인 백무산의 시집 <길 밖의 길>을 다시 펼쳐본다. “내가 가꾼 텃밭에 잡초만 무성하네/ 내가 심어 싹을 틔운 것은/ 그늘에서 햇빛도 받지 못하였네/ 잡초들만 꽃을 피워 가득하네/ 내가 가꾼 것은 꽃망울도 맺지 못하였네/ 내가 꿈꾸어 온 것은 어디 가고/ 낯선 것만 내 텃밭에 뿌리내렸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말한다. “그래도 저것은 모두 내 텃밭에 핀 꽃들”. 문재인과 윤석열 시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와야 할까? 올 수 있을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