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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불법은 없었다’는 궤변

등록 2022-04-27 18:11수정 2022-04-28 02:43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기 전 입장문을 읽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기 전 입장문을 읽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손아람 | 작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증인은 위증의 죄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변호사는 피고인의 유죄 사실을 알고도 무죄 변론을 펼칠 수 있고, 의미가 없는 자료를 내세워 법관의 판단을 오도하기도 한다. 유죄인 피고인을 위해 무죄 변론을 펼쳤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변호사는 없다. 법에 적혀 있지는 않지만, 이는 변호사 비밀유지 특권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도 고유의 특권을 갖는다. 직무상 발언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기에 이를 면책 특권이라 부른다. 또한 대통령은 범죄자의 형집행을 중단시킬 사면 특권을 갖고 있다.

특권은 특정한 신분 혹은 직업을 가진 이에게만 보장되기 때문에 특권이다. 특권이 없는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불법이 된다. 특권을 뜻하는 영어 단어 ‘privilege’(프리빌리지)는 어원상으로 ‘private law’(프라이빗 로), 즉 ‘개인에게 적용되는 법’이란 뜻이다. 제정 로마 시대에는 이러한 특권이 개인이 속한 계급에 따라 주어졌지만, 현대 사회에는 출생 신분과 관련된 특권이 남아 있지 않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현대의 직업적 특권은 사회적 취지와 함께 존속한다. 변호사 비밀유지 특권은 피고인의 변론권 보장, 국회의원 면책 특권은 입법부의 독립, 대통령 사면 특권은 사회 안정이라는 취지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종종 사회를 위해서는 한줌 보탬도 되지 않는 방식으로 특권이 행사되는 때도 있다. 특권의 남용이다. 이를테면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들의 경북대 의대 특혜 편입이 이런 경우다. 정 후보자는 ‘불법은 없었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여론에 맞선다. 말하자면 이런 소리다. ‘학생 선발 제도와 관련된 재량은 자신에게 신분적으로 주어진 특권이고, 이 특권으로 친족이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막는 법률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불법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불법과 합법이 이율배반의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불법이 아니라면 합법이고, 합법이라면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사회가 법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시민들은 특권의 남용을 합법이라 여기는 대신 초법적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하태경 의원은 정호영 사태가 ‘불법을 떠나 이해상충’이라는 말로 상황의 심각성을 교묘하게 축소한다. 이해상충은 개인과 조직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나 쓸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이 이해상충이라면 이해당사자는 정호영 후보자와 경북대학교가 되어버린다. 정 후보자는 자녀의 교육 기회를 얻었고, 경북대학교는 인재 확보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경북대학교가 잃어버린 것 따위에 누가 관심이 있단 말인가? 하태경 의원의 발언은 특권과 사회적 규칙 사이의 충돌을 은폐하려는 시도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정호영 후보자의 문제가 불법이라서가 아니라, 반대로 불법성을 쉽게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형식적 특권 아래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정 후보자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녀가 특혜 입학할 때에도 장관 후보자로 지명될 때에도, 그는 “불법은 없었다”고 말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은 한술 더 떠 “조작했냐. 위조했냐. 조국 사태와 뭐가 같은지 근거를 대보라”고 언론에 일갈한다. 굳이 말하자면 조국 사태와 정호영 사태는 같지 않다. 조국 사태에는 엄연한 불법 정황들이 드러났다. 역설적이지만 입시제도 자체를 조작하는 수준까지 특권이 행사되지는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호영 후보자의 경우처럼 동료 교수들이 만점을 뿌리는 주관적 정성 평가를 이용했더라면, 조국 전 장관의 자녀들은 아무것도 위조하거나 조작할 필요가 없었을 게 아닌가? 장제원 비서실장이 내세운 합법성 논변은, 확보한 합법의 면적만큼 교육제도를 침식시키는 것이다. 특권의 초법성에 완전하게 의존하는 궤변이다. 그런 궤변은 음주 운전과 경찰 폭행으로 구속된 본인 아들이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날 때를 위해 아껴두는 게 좋겠다. 그때도 똑같이 말해야 할 테니까. “불법은 없었다. 근거를 대보라. 대통령의 사면 특권 행사는 합법이다.”

나는 정호영 후보자의 잘못보다 그를 두둔하기 위해 등장한 정치권의 말들에 화가 난다. 합법을 논하려면 당당하게 새 법을 만들기 바란다. 고위공직자 자녀를 위한 기여입학제도를 도입하든지 하라. 그 전에는 사기꾼의 언어로 건강한 시민들의 사회에 상처를 남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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