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고] 한가람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중대장이 병사의 성기를 때리고 양 젖꼭지를 잡아 비틀었다면 추행일까 아닐까. 대법원은 중대장을 처벌했을까 무죄라고 했을까. 2008년 대법원은 군형법상 추행죄로 기소된 위와 같은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군형법상 추행죄가 처벌하는 추행이란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비정상적 성적 만족 행위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중대장은 공개된 장소인 복도나 사무실에서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이런 일을 벌였으니 “비정상적 성적 만족 행위(=동성애)”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무죄라는 것이었다.
목격자들 앞에서 벌어진 성폭력은 면죄부를 받았고 사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성소수자의 사랑은 처벌 대상임이 명확해졌다. 대법원의 권위가 실리고 공문서로 이루어진, 동성애에 대한 공적 혐오 표현은 덤이었다. ‘동성애 처벌법’으로 도입된 군형법상 추행죄의 본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동성애 처벌법’이 있는 군대에서 성소수자 군인이 제대로 복무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정체성 입증을 위한 성관계 사진 요구,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성소수자 군인 색출 수사까지 군대 내 인권침해와 차별 사건이 이어져왔다. 드러나지 않은 차별과 혐오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각급 유엔 국제인권기구에서 우려를 표하면서 그 배경이 되는 군형법상 추행죄의 폐지를 요구해온 것은 당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을 담당하는 군인 중 일부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 군인들이 마음 놓고 임무를 다할 수가 있을까. 진정한 국방력을 위해서는 국가가 앞장서서 차별과 혐오가 없도록 성소수자의 안전한 군복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에서도 이런 취지의 가이드라인을 내고 있다.
지난 4월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위와 같은 2008년의 판결을 비로소 변경했다. 14년이나 흘렀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번 판결은 2017년에 벌어진 육군의 성소수자 군인 색출 수사로 기소된 사건들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러한 군당국의 수사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대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군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엄중히 지적했다.
무엇보다 대법원은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라면서, 과거 2008년 판결과 같이 동성 간 성행위를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다고 하는 것은 이 시대의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선언했다.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고 보는 법적 평가가 더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대단히 크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미군정을 거치며 영미법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본국들에서는 이제 모두 동성애 처벌 조항을 폐기하고, 성소수자 군인들의 복무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틀었다. 우리나라 영토 안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동성 부부의 지위를 인정받는 사람들이 미군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는 동성결혼한 미군의 배우자에 대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법적 배우자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동성애 처벌법’ 조항을 더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것은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드러났다. 그러나 소수의견과 2008년의 판결에서처럼 해석 다툼이 계속될 여지는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위헌을 결정해야 하는 이유다. 때마침 이 조항의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는 국회 소식도 들린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해와 폭력을 방치하는 군대의 구조와 제도가 문제다. 우리 군당국과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이다. 선진적인 군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군대 내 인권 보장이다.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과거의 잘못된 혐오와 과오를 스스로 바로잡았다. 헌재와 국회와 군당국 역시도 자신들의 차별과 혐오를 바로잡을 때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 조항이 조속히 폐지되길, 또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군인의 인권 보장이 더욱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