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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등록 2022-04-24 16:03수정 2022-04-25 02:37

차별금지·평등법 4월 제정을 위한 평등텐트촌 설치와 단식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차별금지·평등법 4월 제정을 위한 평등텐트촌 설치와 단식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서울 말고] 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1984년, 초등학교 1학년 반장선거 때다. 43표 가운데 28표를 얻었으니 당연히 반장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6표를 얻은 친구가 반장이 됐다. 담임 선생님의 설명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여학생은 반장은 안 되니까 부반장 하면 되겠다.” ‘여학생은 왜 반장이 될 수 없어요?’라고 따져 묻지 못했다. 성별을 이유로 지극히 공식적으로 차별당한 첫 기억이다. 그 뒤 ‘여성’이라는 이름은 참 다양한 상황에서 끈질기게 차별을 끌고 왔다.

대학생이 되어 보편적 인권이라는 말뜻을 배워가면서 차별과 싸우는 이들의 편에서 함께 분노하고 행동했다. 차츰 행동에 게을러지더니 언제부턴가는 인권단체에 정기후원을 하는 것으로 마치 할 일을 다한 듯 태연하게 잊고 지냈다. 며칠 전 걸려온 전화 한통이 그런 안일한 생활인을 참 부끄럽게 했다.

‘○○시죠? 인권단체 활동가 △△라고 합니다. <한겨레> 지면에 글 쓰시잖아요, 이번에 꼭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게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 대구 이슬람사원 문제처럼 우리 사회에 명백한 혐오와 차별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예의 바르고 차분했다. 그런데 그 담담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간절함이 전해져왔다.

그 통화 전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인권활동가들이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멀찍이 서서 귀를 닫고 있으니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차별은 끊고 평등을 잇는’ 릴레이 단식행동 ‘평등한끼’도 모른 채 지나갔고, 지난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도보행진이 인근을 지날 때도 흘려 넘겼다.

차별금지법안을 찾아 금지하고 있는 차별사유를 짚어본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

자문해보았다. “위 법안에서 명시한 차별사유 가운데 내가 경험한 차별(차별을 하거나 받은)을 모두 고르면?” 손꼽아보니 아닌 걸 고르는 편이 낫겠다.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제아무리 상대적으로 유리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차별에 무뎌져서 차별을 당하는 줄도 모르면서 당하고 차별하는 줄도 모르고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나와 상관없는 일, 소수자의 일로 밀쳐두고 있다.

국내 장애 인구 비율은 5%를 넘고 그 가운데 89%가 중도장애다. 고령 장애 인구의 비율도 해마다 늘고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세금 폭탄’이라며 핏대를 세우는 종합부동산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 남짓이다. 대다수는 종부세를 낼 확률보다 장애인이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장애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유로 차별받는 소수자가 될 확률 역시 종부세를 내게 될 확률보다 높다. 이 명백한 사실을 외면한 채 힘 있는 극소수를 위한 종부세 인하에는 맞장구를 치면서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가로막아 선다.

반듯하게 자리를 지킨다고 여기지만, 실상 세월은 시나브로 사람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끌어당긴다. 많이 가질수록 그 기울기는 점점 더 심해지고 그만큼 더 안락함을 느낀다. 마음만 먹으면 차별금지법을 만들 수 있는 국회 안 사람들이 열흘 넘게 곡기를 끊고 호소하는 ‘평등 텐트촌’을 쉽게 외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럴수록 더 많이 알려내어 어떻게든 힘을 모으려는 간절함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목소리가 내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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