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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전쟁 극장

등록 2022-04-21 18:05수정 2022-04-22 02:36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 위키미디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 위키미디어

[크리틱]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원고를 읽는데 ‘전쟁’ 옆에 ‘극장’이란 말이 나온다. 그러면 편집자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시어터 오브 워’(theater of war, 군사학 용어로 전쟁이 진행되는 영역을 뜻함)를 번역자가 ‘전쟁 극장’이라고 무심코 옮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전역, 중국인들은 전구라 옮기는데, 한국에선 이를 둘 다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한다. 클라우제비츠 <전쟁론>(1832)의 국내 초역에서는 전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전쟁 극장’은 오역이 아닌 경우도 있다는 데 묘미가 있다. 극장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드러내는 게 원저자의 의도인 것도 있으니 말이다. 편의상 이 글에서도 ‘전쟁 극장’이라는 말을 사용하겠다. 그렇다고 이를 번역어로 제안하려는 건 아니다.

전쟁 극장은 클라우제비츠 이전부터 있던 말이다. 속설에 의하면 전황이 궁금한 왕과 영주들이 지도를 가지고 보고받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 좀 더 실감할 수 있도록 전쟁을 극화하여 궁정 무대에 올리게 한 것이 어원이라고 한다. 이런 극장은 대중을 상대로도 존재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영국의 흥행업자들은 유럽 전쟁터에 특파원을 파견해, 그들이 새로운 전투 소식을 보내오는 대로 재빨리 극화하여 런던 극장에서 돈을 벌었다.

클라우제비츠는 극장을 외부 현실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서양 문화에서 극장이 이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인가 하고 놀랄 때가 있는데, 우리는 수술실의 옛 명칭이 ‘수술 극장’이었음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군사(軍事, 군대·군비·전쟁 같은 군에 관한 일)라는 것의 극장적 요소들은 흔히 지적되고 있다. 실용적이라 보기 어려운 번쩍이는 군복이라든지, 해마다 광장에서 펼쳐지는 열병식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런 것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전략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민간인 지역을 초토화시켰다는 뉴스가 나온다. 물론 이는 공격자가 자신들이 이처럼 무자비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알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알리는 걸까?

전쟁은 자체의 목적과 효율성을 따르는 게 아니라 정치에 복종할 뿐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경구처럼 오해되는 말도 없지만, 그 뜻은 ‘전쟁 중에도 정치 외교 협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정치의 입장에서 최종 목적은 유리한 강화조약의 체결이며, 전쟁은 이를 위한 협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 평화 협상과 반대이기는커녕 바로 그 테이블에 펼쳐놓는 수단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전쟁의 민얼굴에 좀 더 접근하게 된다.

지난 4월11일 한국 국회의사당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화상 연설이 있었다. 알다시피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 장소가 본회의장이 아닌 지하 강당이었고, 둘째, 참석 의원이 300명 중 50명에 불과했고, 셋째, 단 한 차례의 기립 박수도 없었다(휴대폰들을 보고 있었다). 개전 후 젤렌스키가 화상 연설을 행한 국가는 스무 곳이 넘는데 이런 대접은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의 무심한 반응은 여러 나라에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국회의원들은 젤렌스키를 ‘봐주러’ 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극장의 진짜 무대는 스크린이 아니라 관람석이라는 것을 감지한 의원은 없었던 듯 보인다. 만일 한반도에 위기가 닥쳐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오면, 저 국회 풍경은 외국 뉴스에 냉소적으로 인용될 것이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국은 ‘엄밀하게는’ 70년간의 전쟁 상태에 있다. 이는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이 전쟁에든 외교 협상에든 전세계에서 가장 무관심하고 태평한 나라가 된 것이 사태의 진상일지도 모른다.

클라우제비츠의 &lt;전쟁론&gt; 초판(1832). 위키미디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초판(1832).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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