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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4대강 망령과 공릉천의 비극

등록 2022-04-19 18:07수정 2022-04-20 02:36

[전국 프리즘] 박경만 | 전국팀 선임기자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 현장인 경기도 파주에는 한강 하구를 비롯해 임진강, 공릉천 등 경관과 생태 환경이 빼어난 명품 하천이 여럿 있다. 이 지역 하천들이 자연성과 생명력이 뛰어난 생태계의 보고가 된 것은 정전 이후 70년간 전국에 몰아친 개발광풍에서 비켜나 있었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감조하천이어서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 안성천, 삽교천 등 전국 상당수 하천 하구에 대규모 방조제가 축조될 때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한강 하구는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하천 하구의 원형을 간직할 수 있었다. 조석의 영향을 받아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 생태계를 이루는 감조하천은 육상과 수생 동식물이, 해수와 담수의 복잡한 먹이그물이 존재해 생물다양성이 뛰어나다. 덕분에 도심 접근성이 좋은 공릉천 하구는 여러 연구기관과 환경단체들이 생태체험교육과 조류 연구·관찰을 하는 터전이자 지역주민들의 자연산책로로 주목받았다.

한강의 제1지류로 동북아시아 철새 이동의 핵심 거점 구실을 하던 공릉천 하구가 지금 반생태적 하천정비 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천과 농경지를 이어주는 생태통로인 흙 제방 길과 새들의 은신처 구실을 하던 제방 사면의 수목은 사라졌고, 과도하게 높인 둑마루에는 너비 7m 콘크리트 자동차도로가 들어섰다. 하천 둔치에는 예외 없이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만들어졌고 둑방 아래에는 너비 2.5m, 깊이 3m 규모의 유(U)자형 수로가 기다랗게 건설돼 생태축을 두 동강 냈다. 뭇 생명을 노리는 이 위험천만한 콘크리트 수로의 용도는 북한군의 탱크 진입을 막기 위한 대전차방호벽이다. 국토교통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2016년 12월 제출한 ‘공릉천 파주지구 하천정비사업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에는 수로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군 협의 과정에서 육군 9사단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문제점투성이인 이 공사의 목적은 “공릉천 수생태 건강성을 증진시키고, 청결하고 쾌적한 자연환경을 보전하며, 생명력 있는 하천으로 재창출하기 위함”이란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국 곳곳에서 공릉천 정비사업과 같은 4대강 사업의 망령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자 신분이던 지난 2월 현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지속가능한 국토환경 조성’ 항목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에 건설한 16개 보를 개방하는 등의 4대강 재자연화가 “친수관리와 이용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윤 당선자는 경북 상주 유세에서도 “민주당 정권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하신 4대강 보 사업을 폄훼하며 부수고 있다. 이것을 잘 지켜 이 지역 농업용수와 깨끗한 물을 상주·문경 시민이 마음껏 쓰도록 지켜내겠다”며 4대강 사업 계승 의지를 밝혔다.

윤 당선자가 공약한 ‘4대강 재자연화 정책 폐기’는 첫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한화진 한국환경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을 지명하면서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커졌다. 한 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환경비서관을 지냈으며, 비서관을 마친 뒤 2011년 ​학술지 기고문에서 수자원 확보, 홍수·가뭄 방지, 수질 개선과 수변 지역 생태계 복원 효과까지 기대된다며 “4대강 살리기 사업이야말로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통합대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민 다수의 반대 속에 강행된 4대강 사업은 22조원의 예산을 들인 역대급 토목사업이었지만, 자연스레 흘러야 할 물의 흐름이 정체되면서 녹조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해 ‘녹조라떼’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녹조라떼 낙동강 물로 키운 농작물에서 발암성을 띠는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4대강 자연성 회복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천을 포함한 물관리 업무가 환경부로 통합 일원화된 만큼, 이제는 환경부가 답해야 한다. 반환경·반생태적인 공릉천 정비사업과 같은 제2·제3의 4대강 사업이 환경부가 진정 바라는 하천의 모습인가.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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