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퐁니 마을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현장에서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응우옌티탄이 <한겨레21> 취재진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상읽기] 임재성 |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과거사 청산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성취는 빼어나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적 위원회가, 학살 이후 약 40년 만에 최초로 법률에 따라 설치되었다. 제주4·3의 경우 포괄적인 배·보상 제도가 갖춰졌다. 진실규명을 넘어 피해 보상까지 국가가 온전히 책임지는 기념비적인 성취다. 여순사건 역시 진실규명에 착수할 위원회가 사건 발생 74년 만인 올해 드디어 출범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도 2020년부터 다시 활동 중이다. 사건별로 구성된 개별위원회가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접수하고 조사하는, 과거사 청산의 ‘지붕’ 같은 기구다. 1970~1980년대 부랑인으로 낙인찍힌 이들을 강제수용했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현재 진실화해위가 조사하고 있다.
이런 문재인 정부였기에, 간절한 기대를 가졌던 이들이 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다. 2019년 4월 베트남인 피해자 103명은 이름, 주소, 서명, 사진과 피해 사실까지 첨부해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원했다. 청원서 중 일부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제주4·3, 광주5·18, 한국전쟁 등 과거 발생한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진상조사를 하여 진실을 밝혔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합니다. … 우리는 한국 정부의 그러한 일관된 원칙이 당연하게도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누가 ‘베트남이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가.
전후 최초의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공식적 요구. 대한민국은 국방부 명의로 다섯달 후 한장짜리 답변을 했다. “국방부에서 보유하고 있는 한국군 전투사료 등에서는 주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국가범죄가 공문서에 기재되어 있을 리 없다. 답변이 기가 막혀, 어떤 자료를 검토한 것이냐 물었다. 국가정보원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자료는 확인했냐고 물었더니, 확인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자국민의 피해에 대해서는 법률을 만들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국가폭력에 빼앗긴 삶과 세월에 충분한 위로가 될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할 것”(김부겸 총리, 2022년 4·3 추념사)이라 다짐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외국인일 때, 해당 국가가 피해자들을 충분히 대변하지 않아 목소리가 크지 않을 때, 대한민국은 ‘확인 불가’라고 답변한다. 자국 군대의 불법행위 의혹이 50년째 제기되고 있고, 피해자들이 그 시간 동안 절규하고 있는데, 조금 더 지나면 사과할 당사자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는데, 최소한의 진실규명 절차는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물어도 답이 없다. ‘내로남불’이며 이중잣대다.
1968년 2월, 응우옌티탄은 8살이었고 베트남 중부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복부에 총격을 당했다. 같은 자리에서 오빠를 뺀 가족은 모두 한국군에 의해 몰살당했다. 고아로,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응우옌티탄은 103명 청원인 중 한명으로 대한민국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조금 더 해보기로 했다. 그는 2020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 최초의 국가배상 소송에 원고가 되었다. 2년의 변론 끝에, 오는 8월9일 응우옌티탄이 직접 대한민국 법정에 서서 진술한다. 그가 원 없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같은 1968년 2월 베트남 하미 마을에서는 135명 이상이 역시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당시에도 한국군은 학살이 범죄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군은 사건 다음날 다시 하미 마을로 와 불도저로 시신들을 훼손했다. 증거인멸을 위한 반인륜적 행동이었다. 그 하미 마을 학살 피해자 중 5명이 오는 25일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취로 만든 대한민국 과거사 청산의 지붕 같은 기구에, 당신들만이 아닌 모두의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요구를 전달한다. 신청인 중 한분의 이야기다. “피해자들이 정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시길 희망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보도가 이어진다. 한국 내 분노의 여론도 크다. 그 분노가 부디 ‘내로남불’이 아니길 바란다. 한국이 벌인 민간인 학살과 그 책임에 대해서도 똑같이 분노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