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종교] 구형찬 | 인지종교학자
“종교상의 이유로 회식에 불참합니다.” “종교상의 이유로 야근할 수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라면 왠지 어느 정도 통할 것 같은 말이다. 이처럼 내키지 않는 제안이나 요청을 거절하는 ‘가성비 좋은 이유’가 되려고 창립된 신종교가 있다고 한다. 일본의 한 젊은 사진작가가 농담처럼 만든 ‘엠톱교단’이다. 신도는 1만1천명 정도이며 그 가운데 2천명 정도가 한국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가입과 탈퇴는 자유롭다. 해당 교단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하거나 언팔로하면 된다.
‘종교상의 이유’라는 말이 ‘종교적 양심’을 환기시키지만, 그 둘을 간단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대법원 판례는 ‘양심’에 대해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가 아닌 ‘종교상의 이유’는 양심이 아니라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핑계’를 “내키지 않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이라고 정의한다.
사실 자신의 의사결정에 대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핑계로 내세우는 것을 뭐라 하기는 어렵다. ‘종교의 자유’라는 근대적 관념이 없었던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전통사회에서 내키지 않는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궁합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자신의 의사결정에 대해 다른 사람의 종교적 신념을 핑계로 내세운다면 어떨까? 억지스럽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7년 12월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이래로 입법 요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약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다. 종교계, 특히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 여론이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많은 정치인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이른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주된 근거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적 합의’는 단지 핑계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은 내키지 않는 법률을 입법해야 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자기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정치인들이 종교계의 반대 여론을 핑계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교인들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통념을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심이 없거나 반대하는 정치인은 마음이 편할 것이다. 마침 보수 개신교가 ‘종교상의 이유’를 들어 격렬하게 반대를 해주고 있으니까.
상황이 변했다. 2020년 6월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개신교계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의 의견이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옹호하는 개신교 단체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개신교인의 다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지 않는다. 2021년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 사람은 315명에 불과했다. 반대를 표명한 경우에도 성서의 규정(21.3%)이나 종교의 자유(15.1%) 등 직접적인 종교적 이유를 제시한 사람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불평등과 차별은 자연스럽다. 그것을 억제하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쉬울 까닭이 없다. 당연히 반대도 있을 것이다. 토론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정치인들이 자기 입장을 명확히 발언할 때다. 남의 종교적 신념을 핑계 삼는 것은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