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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때로는 플레이리스트처럼

등록 2022-04-17 16:32수정 2022-04-18 02:40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 채널 ‘때껄룩ᴛᴀᴋᴇ ᴀ ʟᴏᴏᴋ’ 갈무리.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 채널 ‘때껄룩ᴛᴀᴋᴇ ᴀ ʟᴏᴏᴋ’ 갈무리.
[한겨레 프리즘] 이승준

이슈팀장

뒤늦게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푹 빠졌다. 그동안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재생목록이나 ‘톱100’ 같은 차트에 거부감을 가졌다. 그런데 오늘 못 한 일, 내일 할 일에 대한 고민 등으로 마음이 뒤숭숭한 어느 날 밤 무심코 유튜브 검색창에 ‘일하기 싫을 때…’를 쳤는데 (알고리즘의 신비인지, 공포인지) ‘머릿속이 복잡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듣기 좋은 팝송’이란 제목의 플레이리스트가 떴다.

음악도 위안이 됐지만, 수많은 댓글을 보며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닐 거야”,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서 살아갑시다”, “야간 근무하다 듣는다” 등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말인데도 마음이 간질거렸다. 얼굴도 모르지만, 수많은 이들과 같은 주제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게 얼마 만인지. ‘공부할 때 듣기 좋은 음악’, ‘코딩할 때 듣는 음악’처럼 실용적인 것부터 ‘버스 창밖으로 도시의 밤이 펼쳐졌다’ ‘나른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등 같이 감성 가득한 것까지 몇십만~몇백만 조회수를 훌쩍 넘기는 플레이리스트들이 수두룩했다. 몇십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도 많았다. 음악 큐레이션 유튜버 대부분 플레이리스트를 올려도 저작권 문제로 광고 수익을 크게 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도 한땀 한땀 노래를 채워 넣은 1시간가량의 플레이리스트를 업로드한다.

무엇보다 플랫폼으로서 이곳의 미덕은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창,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커뮤니티 등과 조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 음악을 얹은 덕분이겠지만, 플레이리스트에는 끝없는 말싸움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와 폭언을 찾기 어렵다. 음악을 매개로 소통과 공감을 나누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과거에 업로드된 플레이리스트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밤늦게 일을 하거나 마음이 복잡한 이들이 계속 유입돼 나름의 서사나 역사를 만들어 간다.

플레이리스트를 듣다 포털이나 에스엔에스에 올라오는 뉴스, 게시물 목록을 보다 보면 마음이 다시 복잡해진다. 음악과 뉴스는 확연히 다르고, 사회·정치 현안에 대한 사람들 생각이 갈기갈기 찢어진 지 오래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우리 편’과 ‘적’을 나눠 끊임없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유명인사들,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언론, 댓글에 분노나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이 생태계를 지탱한다. 이슈는 다른 이슈에 밀려나 휘발되고 ‘전쟁’은 반복된다.

그럼에도 때로는 서로 공감하고,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참여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슈 플레이리스트’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격으로 공론장에 떠오른 ‘장애인의 권리’가 그렇다. 이 대표가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비판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고립시키려 했지만, 덕분에 우리 사회가 사실상 처음 이동권 등 장애인들의 삶의 문제에 주목하게 됐다. 그동안은 지하철에서 누군가 사고를 당했을 경우 잠깐 관심을 받거나, 지하철 시위를 하면 ‘출근길 교통 불편’ 제목을 단 기사만 쏟아지는 게 현실이었다.

지난 13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이 대표의 일대일 토론 유튜브 생중계 댓글창에는 ‘이 대표가 이겼다’ 부류의 댓글이 가득했지만 이건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지하철 시위에 대한 생각은 달라도 공동체의 ‘어떤 구성원’들이 온전한 삶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남았다. 새로운 이슈들에 관심이 줄어들더라도 ‘장애인 권리 플레이리스트’는 계속 재생됐으면 좋겠다. 플레이리스트를 매개로 혐오의 언어 대신 이해와 공감의 언어가 이야기를, 역사를 쌓아간다면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는 21년간 이동권 등을 외쳐온 박 대표 같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 대표 같은 정치인과 나 같은 언론 종사자, 많은 시민들이 계속 함께해야 가능한 일이다.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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