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국방부 자리에 들어서게 될 대통령 집무실 공원 조감도. 공동취재사진
[크리틱] 배정한 |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3월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녹색 카펫이 넓게 깔린 조감도를 짚어가며 집무실 이전 구상을 알렸다.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주위 미군기지 반환이 예정돼 있어 ‘신속하게 용산공원을 조성’해 국방부 청사를 집무실로 사용할 수 있고, 국민들과 ‘교감과 소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집무실 이전 자체도 뜨거운 논란을 낳았지만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도 급속도로 달아올랐다. 2020년 말 2000명에게 설문한 결과를 보면 용산기지가 공원으로 바뀐다는 걸 아는 응답자가 16%뿐이었다. 지난 4주간 용산공원이 평범한 시민들의 밥상 정치토론거리로 소비된 건 정말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용산공원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역설적이지만, 질곡의 땅 용산기지가 2030년대 초쯤 공원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은 커졌다. 기지의 공원화는 30년 넘는 세월을 겪으며 다각적 계획과 지난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의 강을 건넜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사업이었다. 여의도보다 넓은 300만㎡ 빈 땅은 부동산개발론과 주택공급론의 위협에 늘 시달렸다. 적어도 아파트 지어 집값 잡자는 주장은 이제 없을 것 같다.
사실 공원을 공원으로 완성하는 것과 집무실 이전은 별다른 관계가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 지난해 변경 고시된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에 따르면 완공과 개원에 최소 ‘N(기지 전체 반환 완료 시점)+7년’이 필요하다. ‘신속하게 용산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로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상한다면 반환을 약간 앞당길 순 있겠지만, 부지 조사와 정밀 측량, 오염 조사와 정화, 실시설계, 단계별 공사에 필요한 7년은 단축하기 어렵다. 시점을 당겨 못박고 절차를 생략하면 졸속과 부실을 낳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의 과제는 ‘자연과 문화, 역사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열린 국가공원’이라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계획과 조성 과정을 충실히 지원하는 것이다. 온전한 용산공원을 미래 세대에게 선물하는 건 그다음 일이다.
정작 집무실 앞마당을 열어 공간적 ‘교감과 소통’을 실천하기 위해 해결할 난제는 ‘국방부의 공원화’다. 문제의 조감도에 표현된 건 미군 기지가 아닌 국방부 부지의 개방과 공원화다. 급히 그린 조감도 속 공원엔 세련된 국격도 동시대 공간 미학도 없지만, 시간 부족 탓이었으리라 넘어가자. 스케일을 왜곡하고 디테일을 생략해 광활한 잔디밭의 영역과 경계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림잡아 보면 대부분은 국방부 영내이고 일부는 2월에 반환된 기지와 연내에 반환될 기지다. 반환된(될) 땅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소파)에 따른 반환 절차가 끝나기 전엔 임시 활용 정도가 최선이다. 국방부 영내는 미군 땅이 아니므로 공원 설계를 시작할 순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여러 군사시설이 잔류한 상태에서 과연 시민에게 개방할 수 있을까. 산책과 결혼식이 가능할까. 토론과 숙의, 계획과 설계가 먼저다. 전시적 성과보다 체계적 과정이 중요하다. 합리적 로드맵을 짜고 방향 잡는 걸로 충분하다.
거친 조감도를 바라보며 나는 국방부의 이전 가능성이라는 역설적 희망을 떠올렸다. 그간의 계획 과정에서 온전한 용산공원 조성의 가장 큰 장애물은 국방부 부지였다. 미군이 점유해온 금단의 땅을 돌려받더라도 국방부는 계속 남는 난공불락의 성지라 여겼는데, 집무실 이전 논란이 국방부도 옮길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공원 서쪽을 철벽처럼 가로막은 국방부가 빠지면 신용산역과 삼각지 일대 도시 조직이 용산공원과 연결된다. 새 정부가 할 일은 전쟁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처럼 국방부 부지를 용산공원조성특별법상의 공원조성지구로 편입하고 장기 이전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계획의 실현은 10년 뒤 정부의 과제다.
용산공원 서쪽 국방부 부지가 공원과 도시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용산공원 조성계획도(2018년 안), West 8 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