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오른쪽)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제이티비시>(JTBC) ‘썰전 라이브’에서 일대일 토론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삶의 창] 김소민 | 자유기고가
김용진(35)씨 집에는 구피 어항이 있다. 용진씨랑 같이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도란도란’에서 ‘탈시설’한 장동학(61)씨가 처음 가져본 자기 집에도 구피 어항이 있다. 지난해 그곳 1~3급 발달장애인 18명이 ‘탈시설’했는데 마실 다니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자기 집에도 들여놓다 보니 이집 저집 구피들이 산다. 볕 잘 드는 서울 봉천동 방 2칸짜리 용진씨 집은 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임대주택이다. 지난해 5월 내가 용진씨 집에 간 날, 그는 서울시 장애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느라 출근하고 없었다. 그 집에 ‘도란도란’에서부터 인연을 이어온 강자영, 김치환 사회복지사와 동학씨, 따로 사는 용진씨 아버지가 탈시설협동조합 ‘도약’을 만들려고 모였다. 동학씨, 용진씨 모두 활동보조 월 240시간, 서울시 지원주택서비스 등을 받고 있었는데 이에 더해 이들을 떠받칠 지역사회네트워크를 한겹 더 만들기 위해서였다.
평생 한번도 발달장애인을 만난 적 없는 나는 이런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잘 살 수 있을까? ‘도란도란’은 ‘좋은’ 시설이었다. 들고 나는 게 자유로웠다. 탈시설 뒤 처음 자기 집을 가져본 이들은 어색해서 새벽마다 두 사회복지사에게 전화하기도 했다. 이들을 ‘아저씨’라 부르는 두 사회복지사가 24시간 대기조처럼 현관문 자동잠금장치 배터리가 떨어지거나 집에 누수가 생기면 달려갔다. 시설이 낫지 않을까? “거기서 사실래요?”(강자영) 평생 누구도 내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날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동학씨가 동네 맛집으로 데려갔다. “내 집이니까 좋아요. 아래층 손녀랑 할머니랑 그만 싸웠으면 좋겠어요.”(장동학)
1년 뒤, 용진씨 집엔 여전히 구피가 산다. 용진씨와 동학씨는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에 취직했다. 오전에 활동지원사가 아침밥 등을 챙겨주고 출근하면 일터에선 근로지원사가 그들을 돕는다. 퇴근하면 두번째 활동지원사가 집에 온다. 협동조합도 일을 시작했다. 주로 같이 여행 다닌다. 제주도, 강릉, 소백산… “‘아저씨’들하고 1박2일 놀러 갔는데 정말 자유로웠어요.”(강자영) 새벽에 자주 울리던 전화기도 요즘엔 잠잠하다.
여기까지 오기 어려웠다. 두 사회복지사는 여기저기서 싸웠다. 활동보조 시간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하는데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저씨’들과 지역사회를 촘촘하게 연결했다. ‘아저씨’들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인 나도 ‘연결’에 의존해 산다.
1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한 토론에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장애인 59%가 시설에 남고 싶다고 답했다”며 “탈시설은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비장애인에게는 아무도 시설과 지역사회 중에 선택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사는 건 당연한 권리니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탈시설이 명시되고 한국도 2008년 비준한 이유다. 이 대표가 인용한 설문조사의 대상자들은 시설에서 평균 19년 살았다. 지역사회 복지서비스가 작동했다면 살지 않아도 됐을 세월이다. 그들에게 시설은 선택이었나? 탈시설은 시설에 남겠다는 그 59%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지역사회 속 삶의 기반을 마련하라는 요구다. 그 ‘지역사회 복지서비스’를 강화해온 사람들은 이준석 대표가 아니라 2009년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간 노숙하며 탈시설을 외친 중증장애인들이고, 탈시설에 앞장서온 강자영, 김치환 사회복지사 같은 사람들이다.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문명사회’는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이 언제 끝날지 모를 기다림을 배우는 곳인지 모르겠다. 나는 구피 어항이 있는 용진씨 집에서 ‘문명사회’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