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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누가 민주당을 지배하는가

등록 2022-04-12 17:52수정 2022-04-13 02:41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발언 뒤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발언 뒤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세영 | 논설위원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말은 사실에 대체로 부합한다. 그러나 그가 청와대의 터를 탓하며 ‘단 하루도 그곳에서 근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진실에 가깝던 그 진술은 미래 시제의 ‘알리바이’(부재증명)로 변질되고 만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명제가 청와대라는 특정 공간에 대통령 윤석열이 ‘부재해야 하는’(들어갈 수 없는) 필연적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순수 물리법칙의 세계가 아닌 이상, 인간의 행위가 개입하는 현실 세계에 일방적인 원인-결과, 지배-종속 관계란 없다. 공간과 의식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는 건 맞지만, 그 공간을 만들고, 공간의 의미를 바꾸는 것도 의식을 가진 인간이다. 이런 쌍방향성의 인정 없이는 정치도 사회운동도 존재할 수 없다. 정치든 운동이든, 그 본질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구조·제도를 바꾸려는 의식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에게 공간 탓, 구조 탓, 제도 탓 하는 것만큼 자기 무능을 드러내는 일도 없다. 성실하고 유능한 정치인은 그런 외부성의 제약을 뚫고 어떻게든 국민이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소속 국회의원이 172명이나 되는 더불어민주당은 뭔가를 하려는 열망과 의지는 충만한데 이런저런 이유로 못 하는 일이 차고 넘치는 정당이다. 야당 시절엔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라도 할 수 있었다. 의석수가 열세인데 언론도 검찰도 기업도 적대적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푸념에, 지지자도 국민도 ‘그건 당신들 하기 나름’이라 타박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남 탓 서사’가 청와대 권력에 이어 지방권력, 의회권력까지 틀어쥔 문재인 집권기에도 반복됐다는 사실이다. 검찰과 언론이 여전히 적대적이고, 집권여당이 추진하는 개혁에 사회 곳곳의 기득권층이 극렬하게 저항하니 정책과 입법으로도 국민 기대를 충족하기가 어렵다는 논리였다.

‘적대적 언론’과 ‘무도한 검찰권력’이 디폴트값인 민주당의 ‘남 탓 정치’는 대선 패배 뒤에도 어김없이 계속된다. 달라진 게 있다면 ‘탓하기’의 대상에서 국민의힘의 비중이 대선 전보다 커졌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예비 집권여당인 그 당의 존재가 어떤 때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결단을 민주당이 하게 만들고, 어떤 때는 이미 했던 결단조차 포기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권력 이양기의 시한폭탄이 된 이른바 ‘검수완박’ 이슈를 보자. 민주당에 검수완박은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관철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자 당의 존재 의미를 증명할 정치적 결단의 영역에 속한다. 대선 당시 핵심 공약이었던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어떤가? 민주당의 지금 분위기를 보면 방향은 옳지만 ‘국민의힘 반대 때문에’ 이행이 유예될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 원칙의 작동 영역이다.

민주당의 정치가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건 국민이 보수화돼서가 아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와 ‘반대 때문에’ 사이의 논리적 궁지를 해소할 의지와 능력이 그들에겐 안 보여서다. 물론 그 대척의 논리를 보이지 않게 연결해주는 끈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원 각자의 ‘생존 욕구’다.

민주당 의원들의 정치적 선택에서 핵심 기준이 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관성이나 정책의 정당성은 아닌 것 같다. 복수의 정치적 선택지들 앞에서 그들은 항상 ‘어느 것이 나의 재선과 정치적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당 전체를 휘감은 검수완박의 이상 열기 앞에서 ‘지금 이러는 건 위험한데’라는 불안감을 가진 의원들이 상당하다. 그런데도 이들이 선뜻 이견을 못 내는 이유도 따져보면 간단하다. 그것이 강성 지지층의 요구이고, 그들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반대에도 불구하고’와 ‘반대 때문에’ 사이의 모순에 질끈 눈감는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강성 지지층에게 정치 행위의 논리적 정합성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민주당 의원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게다가 그들에겐 영원한 알리바이, 국민의힘이 있지 않은가.

민주당이 ‘~때문에’ 못 하는 일과 ‘~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한데 모아 인수분해 한다면, 괄호 밖으로 나올 단어는 단언컨대 ‘국민의힘’일 것이다.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도, 안 되게 만드는 것도 국민의힘이라면, 이렇게 말해도 무방하겠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지배한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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