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복잡한 세상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한다는 건 매혹적인 일이다. ‘세계화’는 비교적 최근까지 그런 키워드였다. 한때는 이 단어를 입에 담지 않고서는 교양인들 간의 대화가 성립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찬성이든 반대든 우리는 세계화에 대한 입장을 가져야 했다. 지금은 어떤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화가 주춤하더니, 이후 계속된 경제 침체 속에서 트럼프의 보호주의, 푸틴의 전쟁 등의 와중에 어느새 세계화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런 사례는 키워드의 폐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세상은 키워드 몇개로 요약하기엔 너무도 복잡하고, 키워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부작용이 날 수밖에 없다. 학문의 영역에서 부작용이라 해봐야 별것 없겠다. 하지만 그와 긴밀히 연결된 정책의 영역에선 얘기가 다르다.
최근에 내가 그런 위태로운 키워드로 주목하는 게 ‘불평등’이다. 지금 불평등은 학문과 정책 모두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다. 일국의 정부나 국제기구에서도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로 현실을 이해하고, 불평등 해소를 기치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불평등에 대한 엄중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첫발을 떼었다. 그 결과는 어떤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이다. 대개 불평등은 ‘소득불평등’의 줄임말인데, 소득불평등을 재는 대표적 지표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상당히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7년 6.96에 달했던 소득5분위배율이 2018년 6.54, 2019년 6.25, 2020년 5.85 등으로 꾸준히 줄어들어왔다.
여당과 정부는 이러한 정책 성공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데 불만이 큰 것 같다. 맞다. 언론 환경이 그들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위 성과를 가린 것은 언론뿐이 아니라, 불평등 지표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은 일터에서 노동자 사망, 다방면에서의 불공정 시비, 재벌 총수에 대한 ‘봐주기’,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의 현실이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키워드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환원주의에서 유래한다. (소득)불평등의 프리즘을 통과한 세상에서는, 온갖 사회경제적 문제가 소득격차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리하여 성별 간에, 또는 고용 형태에 따라 존재하는 다양한 구조적 차별이 임금격차의 문제로 축소되는 것이다. 본래 사회경제적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회경제적 구조의 산물이고, 따라서 그 진정한 해결은 그러한 구조의 개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불평등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선 모든 문제가 소득격차로 환원되므로, 그 해결도 소득격차의 개선, 곧 정부의 소득재분배로 해결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소득은 중요하다. 그러나 비정규직 차별이 어디 소득의 문제만이겠나.
이런 사정은 문재인 정부 기간에 개선되었다는 경제지표를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봐도 잘 드러난다. 위에서 인용한 소득5분위배율은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된 것이다. 이에 비해,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5분위배율은 2017년 11.27에서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인 2019년 11.56으로 외려 증가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덕에 11.37로 소폭 감소했으나 2017년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처분가능소득’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의 결과 얻는 ‘시장소득’에 더해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에 따른 소득 이전이 적용된 소득으로, 정부의 재분배 정책의 효과가 반영된 소득이다. 따라서 ‘처분가능소득’ 기준 소득분배가 개선되었다는 것은 우리 정부가 그만큼 재분배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시장소득’ 기준 소득분배는 왜 나빠졌을까? 혹시 이는 불평등을 낳는 경제의 구조는 더 고착화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이러한 사태를 온전히 정책 실패의 결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범지구적 자본주의의 거대한 힘을 어찌 한 나라의 정부가 바꿀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 진영은 이를 허심탄회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우리 경제의 구조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한층 더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다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실리적으로 따져도, 불평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정부의 소득재분배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