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근 삼성전자와 웰스토리를 압수수색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6월 삼성전자 등이 웰스토리에 사내 급식 물량 몰아주기를 했다면서 2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고발한 지 9개월 만이다. 그동안 뒷짐 지고 있던 검찰이 윤석열 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검찰과 윤 당선자의 사전교감, 또는 윤 당선자의 의중을 반영한 ‘코드수사’ 가능성이 제기된다.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을 주도한 윤 당선자와 악연이 있는 삼성은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한 임원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마음 졸이면서 수사를 지켜보는 수밖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씨제이(CJ)에 대한 전격 수사에 나섰다. 이재현 회장은 수천억원의 비자금 운용과 탈세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부당지원 혐의뿐만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의 연관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삼성전자 등은 2013~2020년 그룹 미래전략실의 개입 속에 이 부회장 일가 회사인 웰스토리에 사내 급식 물량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웰스토리는 이를 통해 매년 600억~800억원대 이익을 낸 뒤, 총수 일가가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에 4천억원에 가까운 배당을 했다. 부당지원의 최종 수혜자인 이 부회장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재계에선 삼성 수사가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윤 당선자의 ‘친기업’ 기조와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가 임기 중반 갑자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으로 돌아선 일을 떠올리는 기업인들도 있다. 당시 재계는 “엠비(MB) 정부가 오른쪽 깜빡이 넣고 좌회전한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친기업’ 정부의 사전적 의미는 “기업과 친하게 지내거나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을 채택”하는 정부다. 윤 당선자는 당선 인사에서 “민간 중심”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했다. 경제6단체와의 만남에서도 현장의 어려움을 이유로 중대재해법 완화 요구에 화답했다.
하지만 윤 당선자는 대선 공약으로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강조했다. 대선 과정에서도 “일감 몰아주기 등 시장 공정성을 저해하는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검찰총장 시절에도 유난히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취임사에서 “형사 법 집행에서 최우선 가치는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이라고 말했다. 사석에서 경쟁질서를 해칠 우려가 가장 큰 집단으로 대기업(재벌)을 꼽았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윤 당선인으로서는 낡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면서, 기업의 불법과 반칙을 엄단하는 것은 상충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엄밀히 보면 ‘친기업’은 실체가 불분명하다. 우리 국민 중에서 기업을 부정하는 이른바 ‘반기업’ 정서가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국민은 기업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다. 재벌이 불법 비리를 저질러도 선진국처럼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거나, 불매운동이 벌어진 적이 거의 없을 정도다. ‘친기업’은 허구적 이데올로기인 ‘반기업’과 쌍생아인 셈이다.
‘친기업’은 정책적 지향점도 모호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하면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대기업을 엄단해야 하나, 아니면 중소기업의 고통을 외면해야 하나? 재계가 ‘반기업’ 정서 때문에 기업 하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불법 비리를 호도하고 처벌을 면하려는 궤변에 가깝다. 보수정권도 이를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선거 때마다 ‘친기업’을 내세우는 것은 ‘빨갱이’처럼 진보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윤 당선자는 법치주의 구현을 위해 양손에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을 바라보며 27년 동안 검사 생활을 했다. 이제 대통령으로서 한손에는 ‘친기업’, 다른 한손에는 ‘공정’이라는 결코 조화가 쉽지 않은 두 깃발을 들고 출발하려고 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