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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BL로 보는 한국과 일본

등록 2022-04-07 14:56수정 2022-04-08 02:38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 왓챠의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한 장면. 왓챠 제공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 왓챠의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한 장면. 왓챠 제공

[특파원 칼럼] 김소연ㅣ도쿄 특파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 왓챠의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가 한국에서 화제다. 이 드라마가 남성 간의 사랑을 다룬 비엘(Boy’s Love·BL) 장르인데도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비엘은 한국에서 팬덤은 있으나 확고한 마이너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시맨틱 에러>의 성공으로 뭔가 경계가 무너진 듯한 느낌이다.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고 있다. 비엘이라는 장르보다는 드라마를 빛낸 주인공 박서함·박재찬 배우에게 더 꽂혀 있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엘은 일본이 원조다. 만화에서 시작된 비엘 장르의 근원을 찾다 보면 196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간다. ‘야오이’, ‘주네’ 등 여러 용어로 사용되다가 비엘로 굳어진 것은 1990년대다.

15년 전쯤 도쿄로 처음 여행을 갔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은 곳은 다름 아닌 서점이었다. 규모가 좀 있는 서점의 경우 한층 전체가 만화로 채워져 있는데, ‘비엘’이라는 코너가 따로 있었다. 당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만화책을 펴서 조금 읽다가 너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연령 제한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많이 머무는 곳에 동성애 만화가 별도 코너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일본에서 비엘 장르는 계속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4컷 비엘 만화로 시작한 <체리마호>가 독자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단행본으로 출판됐고, 2020년 10월 공중파 방송인 <테레비 도쿄>에서 드라마로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중국·대만·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단행본(현재 9권까지 출판)은 일본에서만 200만부가 넘게 팔렸고, 영화로도 제작돼 곧 개봉한다.

<시맨틱 에러>나 <체리마호>가 다양한 유통 플랫폼(웹소설·웹툰·만화·드라마·영화)에서 흥행을 하는 데는 무엇보다 잘 짜인 이야기가 한몫을 하고 있다. 두 작품을 보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한테 끌리고 사랑하는 데 있어 성별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인가를 공감하게 만든다.

꼭 비엘 때문은 아니겠지만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인식에서는 한국보다 일본 쪽이 조금 더 열려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본인 친구들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도 있다. 자신들의 친구 등 주변에 성소수자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답변부터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를 다른 사람이 가타부타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일본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여전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고, 법적으로 동성 간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등 권리도 제한받고 있다. 노골적으로 혐오 발언을 하는 보수 정치인도 있다. 하지만 한국보다 한발 앞서 변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동성 커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파트너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15년 도쿄 시부야구·세타가야구가 일본에서 최초로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했고, 지난해 기준 130여곳의 지자체로 확대됐다. 약 2200쌍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민간 영역에는 구속력이 없어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 내 성소수자 인권에 있어 획기적인 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동성 커플을 인정하는 지자체가 단 한곳도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맨틱 에러>의 흥행 소식은 여러모로 기쁜 마음이 앞선다.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지만, 잘 만든 비엘 작품들이 계속 이어져 사회적 편견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는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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