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4호선 혜화역까지 이동하는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류영재ㅣ대구지방법원 판사
지하철은 누가 이용하는가. 지하철은 대표적인 대중교통이다. 대중교통은 시민들의 이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든 공공재다. 시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리지 않는다. 두 다리로 걷는 자도, 목발을 짚는 자도, 휠체어를 타는 자도, 시력이 좋은 자도, 안경을 쓰는 자도, 안내견을 대동하는 자도, 혼자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자도, 보조인과 동행해야만 탈 수 있는 자도 모두 지하철을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구간만큼 이용할 수 있다.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누가 이용하는가. ‘지옥철’이라 불리는 시루 속 한 가닥 콩나물이 될 것을 감수하며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이들, 그들은 누구인가. 지하철의 장점은 저렴하고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며 운전할 필요가 없고 교통체증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지 못했거나, 경제적 사유로 자차 이용 또는 택시 출퇴근이 어렵거나,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지 못해 교통 체증과
관계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이들이 대체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이다.
위 두 가지 면을 고려할 때, 휠체어 이용 시민들이야말로 출퇴근 교통수단으로 지하철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일 것이다. 저렴하고, 운전할 필요 없이,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대중교통이니까. 지하철이 시민들의 이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시민들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출퇴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자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 및 기타 이동에 불편을 겪었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가려져온 진짜 문제점을 목격한다. ‘장애가 배제된 출퇴근 지하철’ 그 자체다.
그간 우리 사회에는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휠체어를 탄 시민들이 거의 없었다. 그 덕에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출발해 다음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휠체어 사용이 배제된 지하철을 기준으로 자신의 출퇴근 시간을 가늠하는 데 익숙해졌다. 출퇴근 지하철의 신속성과 정확성은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휠체어뿐만 아니라 신속한 승하차가 힘든 모든 형태의 장애를 배제함으로써.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들은 어떻게 출퇴근을 했던 걸까. 지하철의 신속한 승하차가 어려운 모든 형태의 장애를 겪는 시민들은 지하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장 근처에서 살거나, 개인 운전사를 고용하거나, 매번 택시를 이용할 정도로 부유하거나, 출퇴근 시간 조정에 자유로웠을까. 그럴 리는 없다. 그보다는 ‘휠체어를 타거나 안내견을 동반한 시민들은 그간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을 타기 어려웠고, 그러한 이동의 제한은 취직 및 직장생활 유지에 어려움을 불렀으며, 그로 인해 휠체어를 타거나 안내견을 동반한 채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수는 더 줄었고, 그만큼 지하철은 비장애인만을 위한 신속하고 정확한 출퇴근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 가능한 설명일 테다. 이처럼 지하철을 이용한 출퇴근에서 배제는 단순히 이동권의 문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서민들의 대표적 출퇴근 수단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직장을 가진 삶에서도 제외되었다는 의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주최 ‘출근시간 지하철 탑승 시위’ 얘기다.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 출퇴근 시간대에 여럿이 휠체어를 탄 상태로 지하철에 탑승할 경우 불편이 야기될 것쯤은 예상했을 것이다. 그에 따른 비난을 감수하고 행했다는 ‘휠체어 이용 출근시간 지하철 탑승 시위’는 그렇게 장애가 배제된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그 자체를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오랜 시간 지하철을 이용한 출퇴근에서 배제되었던 휠체어를 탄 시민들은 이제 마치 출퇴근 시간대엔 지하철을 타는 것 자체가 불허된 것처럼 다뤄진다. 그 과정에서 그들도 동료 시민이란 인식은 사라졌다.
이쯤 되면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비문명인지 의문이 든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시민들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 배제된 삶을 보여주기 위해 휠체어를 끌고 지하철에 오른 이들에게 ‘시민’들의 출퇴근을 볼모 삼지 말라 일갈하는 사회가 문명사회인가. 그보다는 휠체어를 탄 시민들도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그들의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이용이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는 사회가 문명사회 아닌가. 문명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장연 시위의 방식이 아닌 그 시위가 드러낸 사회의 비문명성에 집중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