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충무로역에서 휠체어를 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이 4호선 혜화역 선전전 참가를 위해 승강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고] 권용덕 | 특수교사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갑니다. 1분, 1초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회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인합니다. 대부분 이러한 출근 계획을 세우고 지키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보통’의 삶을 산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하철이 고장 나거나,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처럼 지하철에서 ‘이동권 투쟁’을 하는 단체를 만나게 된다면 지각을 하게 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왜 출근 시간에 이런 활동을 해서 불편하게 하냐는 말을 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듣고 묻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불편하셨나요?”
이동권 투쟁으로 출근 시간이 몇십 분 늦어지게 된 오늘 하루, 그래서 너무 화가 나고 마음이 불편했던 그 하루가 그냥 일상이라면 삶이 어떠할까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삶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먼 길을 돌아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목숨을 건 리프트를 오랜 시간 기다려 타야 합니다. 그마저 없다면 그 지하철은 이용할 수조차 없습니다. 버스를 타지 그러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버스는 더 열악하지요. 저상버스 보급률이 낮아서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엘리베이터도 만들어놓으면 모두가 이용할 수 있고, 저상버스도 일반 버스에 비해 공간이 넓으니 편히 이용할 수 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는 이들이 소수 집단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소외당하고 차별받으면 안 됩니다.
‘이동권’이란 단어는 2003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단어입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권리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동권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이렇게 등장합니다.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2005년 법으로 제시된 이 권리가 2022년 현재 잘 지켜지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볼 때입니다.
특수교사에게는 제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기억해주거나 찾아와주는 학생이 드물기 때문이지요. 물론, 교사가 찾아가도 되지만 ‘아이들이 왜 찾아오지 않을까, 어쩌면 찾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동권 투쟁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이 중심이 되기에 이동권이라는 것이 지체장애의 영역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이동권은 ‘교통약자’를 위한 권리입니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지적장애 또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 학생들입니다. 이 친구들이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저를 찾아오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께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듯, 정보의 해석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쉬운 정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눈에 잘 보이는 이정표, 쉬운 한글, 글자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그림으로 만들어진 정보 등이 있다면 더 많은 발달장애인 분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대중교통을 스스로 이용하는 능력은 삶의 질을 높여주기 때문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성해줘야 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고 스스로 갈 수 있는 권리, 이 권리는 개인이 가진 능력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영역으로 보아야 합니다. 장애로 인해서 발생하는 능력의 한계는 인정하되, 우리 사회는 그 능력 안에서 지원을 통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함께 지내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이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이, 그러한 과정에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특수교육’도, ‘장애인’도, ‘이동권’이라는 말도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조금만 더, 서로를 돌보고 아끼는 그런 세월을 함께 살아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