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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사퇴 압박 ‘내로남불’ / 박용현

등록 2022-04-03 14:55수정 2022-04-04 02:31

정권이 바뀐 뒤 이전 정권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 등이 임기가 남았더라도 스스로 물러나거나 물러나도록 요구받는 일은 일종의 관례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법적인 제동이 걸렸다. 2018년 12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 수사관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사퇴 압박을 폭로하자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며 고발했고, 수사에 나선 검찰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다. 김 전 장관은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물을 산하기관 임원에 앉히는 게 불가피했고, 이전 정부에서도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이전 정부에서도 같은 행위가 있었더라도 명백히 법령에 위반되고 폐해도 매우 심해 타파돼야 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최근 검찰은 산업부가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산하 기관장들의 사직을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대적 수사에 나섰다. 이 역시 자유한국당이 2019년 1월 검찰에 고발한 사건이다. 고발 사건을 3년 넘도록 묵히다가 정권 교체기에 꺼내 든 것을 두고, 검찰이 윤석열 당선자와 코드 맞추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등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철저한 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정부 운영에서도 법과 원칙이 더욱 강조되고, 전 정권 인사 사퇴 압박 같은 불합리한 관행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 같은 이유로 환경부·산업부 장관을 고발했던 국민의힘이 대선 승리 뒤 김오수 검찰총장과 김진욱 공수처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5일 “김오수 검찰총장은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했고,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인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0일 공수처 간담회에서 “김진욱 처장의 거취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국민적 여론이 있다”고 했다. 김 총장 임기는 2023년 5월, 김 처장 임기는 2024년 1월까지다.

이런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와는 별개로,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 사퇴를 압박한 행위의 본질은 환경부 사건과 똑같다. 오히려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이 더 철저히 요구되는 수사기관장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훨씬 심각한 사태다. 이런 ‘내로남불’이 또 있을까.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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